티스토리 뷰

간만의 나노하입니다.

크리스마스 자축설에 나노하가 빠질수야 없는 것이죠.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행복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하야테, 잠깐 괜찮아?]

? 이븐데, 약속 없어?”

 

 

 

느닷없이 울리는 벨소리에 검토하고 있던 서류에서 시선을 떼며 책상구석에 던져놓았던 폰으로 손을 가져가 화면 가득 채우고 있는 얼굴에 살풋 미소가 번진다. 하지만 그 것도 잠시 조금 가라앉은 듯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는 바람에 풀어졌던 입가를 당긴다. 물론 처음부터 그녀는 이런 내 모습 따위 몰랐을 테지만 말이다.

 

 

 

[끝나고, 약속이라거나있어?]

아니, 오늘이라면 괜찮아.”

 

 

 

그런 불안에 잠긴 목소리로 부탁을 해오면 내가 거절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눈치 없는 그녀를 탓하지만, 이렇게라도 그녀의 곁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약간이나마 안도를 하며 마저 펜을 굴린다. 조금이라도 빨리 끝내고 싶어졌다.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으로 나는 지친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계속 해서 나를 괴롭히기만 하는 이 감정에 어쩔 수 없이 의존한 채 시야를 가릴 듯 쌓아있는 서류를 하나하나 정리해 나간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그녀와 약속한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기에 콧대를 짓누르고 있던 안경을 벗어내고 미간을 어루만진다. 너무 집중해서 빼곡하게 박혀있는 글자를 읽다 보니 피로가 배가되어 돌아왔다. 하지만 그렇게 노력한 덕분에 나머지 일들은 내일로 미뤄도 될 수준이 되어 뿌듯한 마음에 옷걸이에 걸어두었던 코트를 지금껏 웅크리고 있던 어깨에 걸친다. 쌀쌀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코트를 걸치고 나니 확실히 몸의 온도가 올라가는 듯 하다. 그저 지금 내 얼굴에 느껴지는 열의 근원지는 바쁘게 움직인 몸에서 발산되는 열도 있겠지만, 코트를 입음으로 밖으로 방출되는 열을 잡아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절대로 그녀를 만난다고 들떠서 그런 건 아니다. 절대로.

 

 

 

하지만 그 열기는 그리 오래 내 몸을 감싸주지는 않았다. 건물 밖으로 나오는 순간 몸을 에워 싸는 추위에 모두 빼앗겨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곧 내 앞에 차가 멈춰서고 뒷문을 열어주는 기사님께 살짝 목례를 하곤 뒷자리에 깊게 몸을 파묻는다. 적당히 등을 타고 올라오는 열기와 차 안을 메우고 있는 따듯한 공기에 노곤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그 기분도 잠시 곧 나를 조심스럽게 흔들어대는 손길에 부스스하게 눈이 떠지는 것을 보니, 결국 기분을 떨쳐내지 못하고 잠깐 눈을 붙였던 모양이다. 오랜만에 일에만 집중한 탓이라고 돌린 채 차에서 몸을 내려 기사님께 그대로 귀가하실 것을 말하고 급히 건물 안으로 들어선다.

 

 

 

꽤 일찍 도착했다고 생각했는데, 저 멀리 눈에 들어오는 금발에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발을 그 곳으로 움직인다. 아까 전화통화에서도 어림짐작 했지만, 기사님을 돌려보내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조금 마실 것 같았기 때문이다.

 

 

 

, 페이트짱 다 큰 처자가 이렇게 세상이 다 끝난 듯 우울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으면 어떻게 해

, 하야테.”

 

 

 

살짝 어깨를 치며 옆자리를 앉으며 분위기도 띄울 겸 입을 열지만, 내게 향하는 어색하게 당긴 입고리 만이 눈에 걸린다. 무슨 일이길래 이렇게 까지 자신도 바라보지 못한 채 서 있는 것일지 궁금했다. 어디 한 번 들어나 보자고, 별 것 아니라면 등을 시원하게 후려치자고 생각하며 내 몫으로 나온 술을 단숨에 넘겨낸다.

 

 

 

무슨일인데, 이러는 거야. 페이트짱 답지 않게 남들한테 폐나 끼치고 말이야…”

 

 

 

기껏해야 실수를 했다거나, 누군가에게 고백을 받았는데 매몰차지 못하게 행동해서 그 사람에게 기대를 줬다 든지 따위의 시시껄렁한 이야기가 나올 거라고 난 확신하고 있었기에 그녀의 입에서 나온 낯선 단어에 내 모든 신경회로가 차단된 듯 반응하지 못한 건지도 모르겠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

얼마 전에 왜 신입사원을 뽑았다고 했잖아. 그 직원인데, 그냥 자꾸 신경 쓰이고, 시선이 가고, 안보이면 걱정되고, 주말이면 보고, 싶고……그러잖아.”

 

 

 

어떻게 반응을 해야 평소의 나처럼 행동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저 그녀의 입에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난 너무도 충격이었고 나를 구석으로 몰아붙이고 있었다. 그저 나의 입에선 한탄 섞인 감탄사만이 뱉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내 상태를 모르는 그녀만이 자신의 이야기에 내가 맞장구를 쳐준다고 생각했는지 힘겹게 한자한자 뱉어내고 있었다.

내게 비수가 되어 돌아오는 줄도 모른 채 그렇게 담담하게 입을 떼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휴가를 쓴, 거야. 걱정 되어서 전화해봤더니 왠 남자가 받더라고……아프니까, 일어나면 전화하라고 하겠다고. 신경 써줘서 고맙, 다고…….”

 

 

 

목이 마르는 건지, 다시 잔을 채워 마신다. 알코올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아닌 그녀이기에 괜찮을까 싶어 바라본 옆 모습은 술 때문인지, 아니면 지금 그녀의 마음속에 들어선 그 사람 때문인지 잔뜩 미간에 주름이 잡혀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느꼈어, 허무함. 그 동안 그녀를 쫓으며 설레고 행복했던 그 모든 감정이 식는 기분. 난 그녀를 사랑, 하고 있었던 모양이야…”

그래서, 어떻게 하고 싶은데…….”

글쎄.”

 

 

 

두 번째 마주한 적안은 억지로 눈물을 삼키고 있는 듯 잔잔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차마 이 이상 그녀의 치부를 옅보고 싶지 않아 그대로 정면에 시선을 둔 채 긴 숨을 뱉어낸다.

 

 

 

포기, 하겠다는 말은 안 하네…”

아하하하하…….”

 

 

 

힘빠진 웃음소리가 허공에 퍼져나가고 적막만이 감돈다. 그저 이따금 술이 잔을 채우는 소리와 흔들리는 잔에 부딪치는 얼음 소리와 그녀의 목을 타고 넘어가는 소리만이 내 귀에 들려온다. 그리고 그 모든 소리와 함께 박자를 맞히듯 잔잔하게 울려오는 심장고동소리만이 그 자리에 내가 함께 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어째서인지 바람을 막아주고 있을 공간이, 처음 들어왔을 때의 온기는 어디로 다 빠져나갔는지 서늘하게 내 어깨를 감싸 쥐는 듯 춥다.

 

 

 

나와줘서, 고마워.”

?”

이제는 좀 괜찮은 것 같아.”

그럼, 됐고….”

역시 내가 친구 하나는 잘 뒀다니까?”

 

 

 

자리에서 일어나 비틀거리는 그녀의 팔을 잡아 챈다. 비죽 웃으며 입을 열고 있는 그녀가 얄미워 그냥 두고 갈까 했지만, 이런 식으로라도 나를 찾아주는 것이 고마워 더 단단히 팔을 고쳐 잡는다.

 

 

 

지금은 내가 그녀의 가장 가까운 곳에 서 있는 사람인 것에 만족한다.

 

 

 

메리크리스마스, 페이트짱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