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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아니 몇달만일까.
홀로 아무렇지 않은 듯 걷고 있는 나이지만, 어쩐지 머릿속은 복잡하다.



"뭘, 넋을 놓고ㅡ"



함께 걷던 이의 부름에 으엉? 바람빠진 소리를 내뱉으며 바라보면 심술이 난 얼굴로 날 쏘아보고 있다. 그 미안함에 얼굴을 억지로 풀어내며 마주한다. 아직 웃는 표정이 어색하기만 하다.



"웃지마, 바보야."



그런 내 얼굴을 손바닥으로 밀며 성큼성큼 앞서 걷는 그녀를 바라보다 그 거리를 단숨에 줄이며 뒤를 쫓는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생각하는 마음이 따뜻해서 일까, 애초에 속도자체랄게 없을 정도로 걷고 있는 그녀였다.



"ㅡ고마워."
"응?"
"오늘, 어울려줘서.."
"자꾸 시덥잖게 행동하면 갈거야ㅡ"



볼멘소리를 하며 나란히 걷고 있는 그녀의 옆모습을 바라보다 다시 시선을 앞쪽으로 움직인다. 자꾸 그녀의 신경쓰지 않는다는 태도에 괜스레 마음이 약해지는 나를 느꼈기 때문이다.



"ㅡ근데..."
"응?"
"무슨, 말이었어? 그..아까ㅡ"
"별거아냐."



그녀의 말을 잘라먹었던 것이 걸려 어렵사리 입을 열면 나를 바라보던 진청의 눈동자가 곧 옅게 웃으며 고개를 죄우로 털며 그냥 단순한 시비였어. 뒷말을 이을 뿐이었다.
그저 아무말 없이 자신의 부탁을 응해준 그녀에게, 그저 옆을 지켜주고 있는 그녀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더 이상 묻거나 하진 않는다.
그것이 그녀식의 배려임을 알고 있기에.



"페이트짱..."



뒷 말이 나올 줄 알고 기다리고 있던 내 기대와는 달리 이어질 생각이 없어보여 접었던 시선을 다시 옆으로 향하면 그 곳에는 조금전까지와는 달리 물기를 가득 머금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녀가 서 있었다.



"하야ㅡ"
"이젠, 괜찮...아..?"



조심스럽게 입을 여는 하야테의 모습을 바라보니 입가가 느슨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를 이렇게나 걱정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이렇게나 벅차오르는 것을 난 왜 지금껏 무시하고 있었던 것일까.



사실 눈물이 많다는 것도, 정이 많아 끊어버리기에 힘겨워 한다는 것도, 항상 혼자 아파하는 그녀라는 것을 알고 있다.
자신의 실수는 아니었다. 단순히 업무수행 중 발생한 긴급상황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곳에 출동을 명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녀는 죄인의 심정으로 나를 마주하지 못했었다.



"괜찮다고 하는 건, 거짓말이겠지만..."



다시 한 번 그녀를 바라보다 시선을 앞 쪽으로 옮긴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내 마음 만큼이나 북적이는 인파를 바라보다 끝도 보이지 않는 빌딩들 사이에 아슬하게 걸려 있는 유유히 움직이고 있는 하얀 구름에 시선이 멈춘다.



"──이젠, 날 수 있을 거 같아."



닿았을까, 손끝에 느껴지는 따뜻한 감촉을.
느껴졌을까, 심장에 울리는 진한 여운을.



"다, 왔네...여기 있을께."
"응."



가지런히 놓여있는 사진에 비춰진 그녀의 모습에 멈춘 줄 알았던 눈물이 세어나오는 기분이 들어 급히 시선을 천정으로 돌려보지만, 이미 시작된 것은 내 마음대로 멈출 수 없었다. 자꾸만 흐려지는 시선을 다잡기 위해 소매자락으로 닦아내지만 곧 뿌옇게 보이는 그녀의 얼굴에 무릎을 꿇고 끌어안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한다.
늦어서 미안하다고,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고 한참을 그녀에게 사죄한다.
차갑기만한 이 곳에 홀로 둬서 미안하다고, 외롭게 해서 미안하다고──.



"나노, 하─"



얼마나 그리웠던 이름인가.
얼마나 애닳펐던 이름인가.
그리고, 그리고, 그리워서 입에 담을 수 없던 이름을 이제야 내뱉어 버린다.



"미안해...."



겨우 짜낸 목소리에 이름이 아닌 감정을 담는다.
사랑해. 라는 말을 마지막에 하지 못했던 자신을, 하물며 그런 그녀의 마지막조차 용기가 없던 난 지키지 못했던 나를 책망하며 어렵사리 입에 담는다.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