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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야, 이제야, 지금에야.
너의 의도를 난 모르겠어.

 

 

 

기대해도 될까, 나.

                                    written by skip

 

 

 

「나........보고싶지 않아?」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 한 꿈에서 깨어 숨을 몰아쉬고 있던 내게.

또 한번.

현실로 돌아온 것이 무색할 정도로

난 또다시 끝을 알 수 없는 곳으로 몸이 빨려 들어감을 느껴야했다.



절로 나온 한 숨에 이 문자를 어떻게 해석을 해야할지 몰라 그저 멍하지 그 다섯글자를 곱씹어 볼 뿐이었다.



「잘못, 본낸 것이겠지」 생각하며 한번.

「술이라도 한 것이겠지」 생각하며 또 한번.

「아, 내가 번호를 잘못 확인했나」 하며 다시 한번.



하지만 폴더를 열 때마다 아무런 실속없이 다시 닫을 뿐.
아니, 또 다시 뭔가 이럴리 없다는 식의 경우의 수만으로 가득할 뿐이었다.



헤어졌음에도 자꾸 생각나고, 잊지못하는 내 모습에 진저리를 치며 며칠전에 번호를 지웠었다.
결혼한 그녀에게 이런 마음을 품는 것은 옳지 않은 행동에서 나온 결과였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 걸어온 싸움에서 패배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 것뿐이었다.
이제 내 핸드폰에서 사라진 13자리 번호처럼 그녀와의 추억역시 지워버릴 생각이었다.
뭐, 나만 잊으면 될 정도로 그녀는 우리의 추억에 대해 별 감흥이 없는 듯 보였던 것이
내가 이런 극단적인 행동을 한 것에 불을 지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이 전 시리즈도 같이 봤었던가?」

「아마도?」



아마도라는건 거짓말.
난 그날의 일을 토시하나 빠트리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그녀의 말 한마디도 잊지 않은 채 내 머릿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으니까.
저렇게 말한 것은 나와의 기억이 흐릿하게만 자리잡은 그녀에 대한 태도에 기분이 나빴기 때문에 심통을 부린 것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의 머릿속에는 흐릿한 기억과 함께 엉터리 기억이 자리잡고 있었다.
 


「맞다, 그때 왜 보다가 막판에 잠들었었지?냐하-마지막이 중요한데 말이지.」
「아......그러게. 그랬....었지.」



저것도 거짓말.
어떻게 그 것을 잊을 수 있는 것일지 의문.
이라기보다는 조금의 배신감이 남는다.



분명 그 때 우리.
클라이막스임에도 불구하고,
그 때까지 억눌러있던 감정을 결국 폭발하듯 산화되고 말았었다.
공기중에 섞여 사라지기라도 하듯
서로의 몸에 강한 애착을 갖은 채 그렇게 매달렸었다.



키스라는 증폭제와 함께 서로를 탐하는 손길이 거칠게 움직이고 있었다.
방안을 가득 울리는 사운드소리에 녹아내리기라도 하듯,
서로의 몸은 엉켜붙어 서로의 손길에 온 신경을 세우고 있었다.
음악에, 화면에, 주인공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우리는 그저 그 순간 서로에게 집중할 뿐이었다.
어떻게 해야 좋아하고,
어떻게 하면 아파하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서로의 몸을.



쾅- 하는 폭발음과 함께 그녀의 교성이 때마침 세어나오고 있었고.
그 소리에 나도몰래 그녀의 입을 막은 채 뜨거운 감촉으로 서로의 입속으로 그 것을 삭이고 있었다.




그리고 쓰러지듯 그렇게 누워 서로의 얼굴만을 응시한채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
분명 공포영화였음에도 우리는 미소를 보내고 있었고,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그 방을 나섰었다.
맞닿은 손을 꽉 잡은 채로.



아.
잠시 그 날의 생각에 솟구치는 감정을 다잡고 키패드를 꾹꾹 누른다.
아무런 감정이 실리지 않은 채.
지금 너와의 관계처럼 친한 친구 사이로 돌아간 채.
평소의 내가 된 채.



「남편이랑 싸우기라도 한거야? 물론. 보고싶어, 나노하─



친구로 돌아가길 원했던 그녀에게 전혀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만 감정을 실어보낸다.
딱 거기까지만 허용한 채 전송한다.



어쩐지 그런 문자 하나에 또 다시 무너지고 마는 내 모습이 눈에 훤하다.
이대론 안되겟다 싶어 그대로 몸을 일으킨다.
간단히 옷가지를 챙겨 샤워룸으로 들어간다.
물을 틀어 온몸으로 그 것을 받아낸다.
후두둑- 몸을 때리던 그 것이 주욱- 몸을 훑고 내려간다.
머리부터 흘러내리던 그 것이 얼굴을, 목을, 어깨를, 가슴을, 허리를, 허벅지를 지나 다리를
그리고 결국 땅바닥으로 자신의 존재를 감춘다.



마치 아무것에도 마음을 주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보내기만 할 뿐인 내 모습과 같이.
정처없이 흘러가던 물줄기는
내게 주어진 일만을 처리하고 귀가하기를 반복하는 내 모습과 겹쳐 보인다.



너와의 이별 후에 멈춰버린 시간은 아직 그 곳에 있겠지.
너와의 헤어짐 후에 멈춰버린 내 심장은 아직 너 한사람만 생각하고 있겠지.
그저 그런 너의 문자에 이토록 이 곳이 아려오는 것을 보니 말이다.



뿌옇게 찬 습기 사이로 아련한 얼굴이 거울에 비치는 듯 하다.
청자색눈동자를 가지고, 연갈색 머릿칼을 휘날리는 그녀의 모습이.
붉게 물든 나의 눈동자에 비친 그녀의 모습이 습기어린 거울을 통해 다시 내 눈에 비춰진다.



서글픈 눈동자를 한 채 내게 이별을 고하던 그녀의 모습이.



「쩌-억.



고민의 흔적없이 그대로 직타한 결과 지금 쓰라린 상처만이 남았다.
내 눈동자만큼이나 빨간피를 흘리는 손과.
그저 이런식으로밖에 반응 할 수 없는.
숨이 막혀버릴 듯한 감각을 느끼게 해주는 가슴에.
보이지 않아 그저 방치했더니 너무 심하게 곪아버린 그 곳의 상처가 이제야 버티지 못하고 밖으로 비죽이 나온다.
눈물이라는 형태를 빌려서.



"나, 난.........아직..."



빨간피가 아닌 투명한 피가 바닥으로 사라진다.
형태도 없이 몸을 타고 흐르던 그 것은 물과 만나 더욱 증폭되고 만다.
바닥에는 붉은색과 투명한 꽃이 피어난다.









"페이트씨 그 상처는 뭐예요!"
"아, 별거 아냐. 넘어졌....달까."
"그걸 믿으라는거에요? 처치는 제대로 하셨고요?"
"뭐, 대충은─"
"상처가 덧난다고요! 이런식은 곤란해요, 자신의 상품에 흠집내는 건 참을 수가 없어요!"
"사, 상품이라니...."
"그 손에 의해 만들어진 곡을 사람들은 좋아한다고요! 앞으로 좀 더 조심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네네, 죄송합니다─"
"잠시만 실례할게요. 그리고, 술은 딱 한잔뿐이에요."
"샤리─"
"애처로운 눈빛을 보내셔도 소용없어요, 벌이니까."



시계는 정확히 4라는 숫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 시간에 부른다고 나오는 이 사람에게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을 담아 챙-하고 울리던 그 것을 그대로 입안으로 털어넣는다.
코를 울리는 찡함에 눈물이 나올뻔한 것을 눌러막고, 목을 타고 흘려보낸다.
목젖을 적시고, 식도를 훑고 내려가는 자극에 「쓰읍. 하아─」 하는 요란한 소리가 입밖으로 세어나온다.
꽤나 저돌적으로 비집고 들어간 알콜의 알싸함이 코를 통해 느껴지고.
곧 위를 짓누르는 감각이 찾아온다.
이런 기분에서 마시는 것이라 그런지, 쉽게 감성적이 되버렸던 것일까.
내 앞으로 내밀어지는 하얀천조각을 멍하니 바라본다.
이윽고 얼굴을 타고 흐르는 날이선 감촉에 황급히 그 것을 받아든다.



"또 곡쓰시다가 그러시는 건가요?"
"역시 못속이겠어."
"잠시 욕실좀 사용할게요."
"거, 거긴."
"치우고 올때까지 감정정리 부탁드릴게요."



날카롭게 쏘아보는 그눈빛에.
투명스럽게 내뱉는 말투에.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모든 것에 따스함이 가득 묻어 있었다.
돌아선 그녀의 뒷모습에선 내가 흘릴 수 없는 눈물을 가득 머금고 있었으니까.



비워진 잔을 채워 그 것을 스트레이트로 비워버린다.
그리고 또 한잔.
또 한잔.
그러다
그녀의 얼굴이 떠올라 한잔.
그녀와의 추억이 떠올라 한잔.



그녀의 결혼식날이 떠올라 한잔.



눈물로 채워진 잔을 비워낸다.
연속으로 비워낸 잔에 또다시 투명하기만 한 추억이 담긴다.
이젠 내 머릿속에만 고스란히 박혀버린 추억이 담긴다.
그리고 그 것을 비워버린다.
내 속으로 삭힌다.
한번더 숨긴다.
아무도 모를 그 곳에 감춘다.
그리고 웃는다.
언제나의 내가 되어.



"와- 금방 이런 걸!"
"뭐, 이시간에 와준 선물. 이랄까."
"이런 선물이라면 언제라도 불러주세요, 페이트씨."
"아무리 같은 여자라지만, 그거 좀 위험한 발언이야."
"아. 그런가요?"
"아무튼 오늘은 고마웠어, 이것도─"



깔끔하게 매듭지어진 붕대가 감긴 오른손을 들며 살며시 미소를 띄운다.
펜촉을 움직일 때 상처가 조금 벌어졌는지 하얗기만한 붕대에 살짝이지만 붉게 베에 나온 비가 눈에 들어온다.
씁쓸한 미소가 입에 걸려 내 앞에서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의 시선에서 빗겨버린다.
「그럼, 쉬세요. 더이상은 마시지 마시고요─.」 마지막말을 남긴 채 문너머로 사라진다.
그리고 곧 그녀가 사라지자마자 긴장감이 풀려서 일까
아까 너무 급히 비워버린 탓일까.
쏫구쳐 나오려는 것을 겨우 막아 눌러 욕실까지 한다.
「웨엑─.」하는 굉장히 불쾌한 소리가 그 곳에 울려 온다.
소리만큼이나 불쾌한 기분에 그대로 주저앉는다.
물을 내리고, 잠시 자리한다.
그리고 깨끗히 정리된 바닥이 눈에 들어온다.



"하하─"



의미없는 웃음소리만이 욕실에 울릴 뿐이었다.
하지만 그 것도 잠시.
곧 귀에 들어오는 공간을 찢는 듯한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거실로 나선다.
반짝이며 울려대고 있는 그 것을 가만히 응시하다, 액정가득찬 그녀의 얼굴이 눈에 들어오자 그대로 손을 움직인다.



받을 수 없다.
들을 수 없다.
볼 수 없다.
지금 이 기분으로 그녀를 어떻게 대해야할지 전혀 모르겠다.
목소리를 들으면 다 팽개치고 달려나갈 나라는 걸 아니까.
목소리를 들으면 가슴을 울리는 그 목소리에 심장이 반응 할 거라는 걸 아니까.
눈물이,
겨우 아문 상처가 다시 벌어질 것 이라는 걸 아니까.



피하는 것밖에 없는 걸
내가 너무 잘 아니까.



다행히 그대로 잠잠해지는 핸드폰을 소파 구석으로 던져버린다.
내 눈에조차 들어오지 못하게.
지워버린 13자리가 다시 비죽이 내 머릿속 한 공간을 차지하려하고 있었다.
겨우 잊을 수 있을 거라 여겼던.
이제야 겨우 곪아 고름이 세어나오던 가슴을 닦아 아파오지 않으려 하는데.



"뭘 원하는거야, 내게."



그리고 한 참을 원래의 내 공간으로 돌아온다.
초침소리만이 간간이 들려오던.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만이 간간이 차지하던.
출근하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아득하게 들리고,
아침햇살과 함께 재잘거리는 참새소리가 들리는.
그 나만의 공간으로.
아무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오직 나만을 위해 생활할 수 있는 공간으로.



「드르륵─.
쉬이 넘겨 들을 법한 문자진동음일 뿐이었는데.
어째서 난 그 것에 기대를 하고 있던 것일까.
「설마 그녀이지 않을까. 란 기대를 품는 내모습에 그저 고개를 좌우로 흔들뿐이었다.
그리고 손을 움직여 내 시선밖으로 사라진 그 것을 더듬어 찾는다.



화면을 몇차례 터치함으로써 나타난 올망졸망한 글자가 
어쩐지 그녀 자체인 것마냥 사랑스럽기만 하다.
어째서 난 보지도 않고 그 문자가 그녀에게서 온 것이라고 단정짓고 만것일까.
생각하기도 전에 곧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 문자에 따스함이.
그녀만의 표정이, 몸짓이 보였달까.
그녀 자체였달까.



지체하지 않은 채 내 몸은 움직이고 있었다.
그 문자를 확인한 순간.
내 이기심이 부른 결론일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이렇게 행동을 해야할 것만 같다.
소극적으로만 행동했던 어리석었던 내 모습을 후회하며.
그저 지금은 마음이 원하는대로 해야겠다.



멈춰있던 심장이.
멈춰있던 시간이.
다시 움직이고 있으니까.









「보고싶어, 페이트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