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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하기만 한 천정이 나를 제일 먼저 맞이한다.
  

 

사랑은 잔인하게 쓰여진다.

Written by skip

 

 

 

여기가 어디인지 굳이 일어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익숙하게 비춰지는 방의 구조와 내 곁에 맴돌고 있는 향기가 리키는 사람은 세상에 한 사람뿐이니까.

 

 

 

그렇기 때문에 나를 감싸고 있는 이 따스한 팔의 주인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페이…….트짱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일까.

이 여리기만 한 사람에게  또 다시 잊지 못할 상처만 주고 말 것임을 누구보다도 알고 있을 터인데.

난 어찌하여 머리로는 알고 있는 그 모든 것들을 제대로 실행하지 못한 채 늘 이런 식으로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난 줄곧 찾고 있었다.

이 부드러운 감촉을, 따스하기만 한 온기를.

이 것이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부부.

였을 터였다.

 

 

 

“미안, 또 멋대로 행동해버려서……..

 

 

 

브론드빛 머리칼의 간지럼 따위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어깨에 닿아 간질이는 이 느낌이 어쩐지 반갑기만 하다.

가만히 나를 감싸고 있는 그 사람의 얼굴을 바라본다.

못 본 사이 꽤나 얼굴이 엉망이 된 듯하다.

가뜩이나 식사를 제대로 챙기지 않던 그녀였다.

내가 억지로 몇 번 말해야 겨우 먹는 시늉을 하던 그녀였다.

그런 그녀가 제대로 된 식사를 할거라는 것은 믿진 않았지만, 그래도.

 

 

 

“왜 이렇게 마른 거야……식사, 제대로 하지 않고…..

 

 

 

속상한 기분에 심장근처가 따끔거린다.

큰 동작을 하면 자칫 그녀가 깨 다시는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없을 것만 같아 조심스럽게 팔을 움직여 자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는다.

 

 

 

감고 있어 보이진 않지만, 항상 자신을 똑바로 바라봐 주었던 붉은 눈동자.

오뚝하게 솟아있는 코.

그리고…….

 

 

 

손으로 닿는 것만으로도 찌릿거리는.

『사랑한다』 느니, 『보고싶다』 느니,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잔득 불러주기도 하고,

부드럽게 닿아오기도 하던.

그저 닿기만 해도 숨이 막혔던.

.

 

 

 

“나 이러면……안 되는…..거였는데.

 

 

 

분명 너무도 기쁘고, 행복해서 어쩔 줄 모르겠다.

이렇게 그녀와 닿아있다는 사실조차 거짓말만 같아 몇 번이고 그녀의 자는 얼굴을 확인했다.

 

 

 

내가 만들어낸 환상일까 싶어, 더욱 품으로 파고들면 『나노하』 부드러운 그녀의 음성이 불려온다.

꿈도 환상도 아니다.

그녀가 정말 내 앞에 있는 것이다.

나를 안고, 내게 키스하고.

나와 함께 밤을 지새워 준 것이다.

 

 

 

이로써 난 그녀에게 또 다시 죄를 짓고 말았다.

 

 

 

이 시간이 깨지는 것이 아쉽지만, 그녀의 붉은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기 전에.

그녀가 나를 보며 내 이름을 부르기 전에.

그녀가 이별의 아픔에 상처받기 전에.

난 이 곳을 벗어나야 한다.

처음부터 내가 있을 곳이 아니었던 이 곳을.

 

 

 

너무도 따스하게 감싸줘서 난 또 착각하고 말았다.

내가 있을 곳이 여기, 라고.

 

 

 

조심스럽게 이불 속에서 빠져 나와 침대주위에 널려있는 옷들을 챙겨 입는다.

일어나보니 더 참혹하기만 한 기분에 씁쓸한 기분이 든다.

 

 

 

이대로 내가 사라지면 그녀는 또 다시 며칠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렇게 지낼 것이 보인다.

모질게 연락도 끊은 채 그렇게 계속 지냈어야 했었다.

그녀가 자신을 미워하도록 했어야 했다.

이런 식으로 다시 한 번 그녀와 만나 그녀에게 용서를 구하 듯 이런 행동, 옳지 않았다.

나만 피해자라는 생각에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하고 만 것이다.

 

 

 

실제 피해자는 그녀였는데도 말이다.

 

 

 

난 또 모진 여자가 되어야겠지.

내 변덕에 잠시 그녀를 불러낸 것으로 해야겠지.

 

 

 

그대로 테이블에 하얀봉투를 두고 나온다.

본래는 자그마한 나만의 공간을 구할까해서 가지고 나왔던 계약금이었다.

이런식으로 돌이갈 수 없는 강을 건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