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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가도 돼?"
"응, 갈게."
"그럼 내일봐, 조심히 가고."
"응"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세상에서 오직 나만이 동떨어진 기분에 휩싸여 급히 발은 움직인다.
휘황찬란한 네온사인과 색색으로 수놓아진 거리를 바라보고 있으니 곧 연인들의 날이라는 크리스마스가 바로 코앞까지 다가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차가운 감촉이 얼굴을 가로지른다.
새하얀 입김이 시야를 가린다.
손을 들어 둥글게 모아진 공간에 다시금 따뜻한 숨을 불어넣는다

「후우─」 뱉어진 숨이 작은 공간에 모이지 않고 그대로 살짝 벌어진 틈새로 모두 새어나간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점점 커지는 이 마음도 가슴에 채우기도 전에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그녀의 마음에 작은 틈새가 생겨 나에 대한 사랑이 빠져나가는 것을 아닐까.
의식적으로 모았던 손을 풀어 주머니에 넣는다.
작은 공간이라도 따스하기만 한 그 곳에는 빠져나가는 일이 없을테니까.
차곡차곡 모아두기로 한다.
조금전에 나눴던 그녀와의 온기를 담아두기로 한다.



그런 생각을 하며 계속 움직이고 있던 다리에 의해 향한 곳은
어느새 나의 시선에 들어오는 것은 어두운 골목길이다.



중간중간 가로등에 의해 암흑으로의 침식은 막을 수 있었지만, 간격이 꽤 넓은 탓인지 두개의 가로등이 맞닿지 않는 곳은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마치 나의 마음처럼.



사랑하고 있다.
같은 마음이며, 외롭고 쓸쓸하지도 않다.
아니, 오히려 함께 할 수 있기에 행복하고 즐겁다.
하지만.



그건 함께 있는 시간일 뿐이다.
이처럼 혼자있는 시간이 다가오기라도 하면 나의 몸과 마음은 사늘하게 식어버린다.
그렇게 타올랐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무감각해진다.
마치 지금 나혼자만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을 아닐까. 생각 마저 든다.



발을 움직일 때마다 비명을 지르며 나를 붙잡는다.
떠나지 말라며 나의 팔을 붙잡던 그녀의 모습이 떠오른 것은 단순한 착각일까.
억지로 다리에 힘을 주어 떨어지지 않는 발을 앞으로 미끌어지듯 밀어낸다.
눈이 마찰력을 줄여주었는지 생각보다 나의 발은 쉽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질척거리는 느낌에, 운동화의 앞코가 축축해지는 기분이 든다.
결코 지금 흘리는 눈물은 슬프다거나, 공허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젖어드는 운동화 때문에 발끝이 시리기 때문에 나오는 눈물일 뿐이다.



「드르륵──.」 마침 주머니에 넣고 있던 손에 작은 진동이 인다.

보나마나 누구인지 알 수 있다.
그 사람밖에 있을리가 없다.
이런 복잡하게 꼬여 있는 마음을 제대로 상대해주는 사람은 그녀 뿐이었으니까.



[페이트짱, 다와가? 추운데 나와줘서 정말 고마워 ^^]



그녀가 옆에서 제잘거리는 듯한 기분에 잠시 입가가 느슨해지고 그와 함께 살풋 웃음이 새어나온다.
그리고 막 다달은 세번째 가로등에 의해 환히 비춰진 거리가 눈에 들어온다.
그녀의 문자에 의해 밝아진 내 마음이 느껴진다.
손을 움직여 답장을 보낸다.

「 잘자고, 내일봐.」 라고.
너무 표현하면 사라질까, 내게 질릴까, 나를 좋아하지 않을까.
복합적인 두려움이 항상 나의 몸을 옭죄고 있기에 습관적으로 방어하곤 한다.
그리고 그러한 행동이 오늘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응, 내일봐♡]



다시 한 번 울린 진동에 손을 도로 꺼내 확인을 하면, 전혀 나의 반응따위 신경쓰지 않는 다는 듯 그녀의 페이스로 온 문자를 확인 할 수 있다.



하지만 다시금 머릿속에 나아닌 다른 이들과도 이렇게 웃으며 지내고 있을 생각에 알 수 없는 분노가 차오른다.
질투를 넘어선 분노.
나만이 아닌, 나도.
ㅡ라는 그녀식의 표현방법이 내게 또 다른 패배감을 주고 있었다.



다시금 내 머리위로 내려앉기 시작하는 하얀촉감이 채 스며들기전에 밝게 비춰지고 있던 그 곳을 벗어나 골목 깊숙히 달려들어간다.





그리고 세상은 밝아지고, 머릿맡의 창을 타고 들어오는 햇살에 이불을 얼굴 끝까지 가둔다.
밝게 내리 쬐는 빛이 마치 그녀의 웃는 얼굴만큼 눈이 부셔 제대로바라볼 수가 없다.



삐뚤어지고, 어둡고, 부정으로 밖에 생각되지 않는 나를 더욱 구석으로 몰아붙이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왜, 난 그녀를 만나고 있을까.
왜, 그녀는 나와 만나주고 있을까.
불쌍, 한걸까.
단지 거절을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착한 사람이니까.



"가야지..."



아직 그녀를 만나기로 한 시간까지는 8시간이 남아있기 때문에 조금 더 누워있을까 했지만 이미 떠진 눈이 다시 감길 것 같지 않았기 때문에 몸을 세워서 잠시 침대에 걸터 앉아 창밖을 바라본다.



밤새 그치지 않고 내린 눈으로 어느새 세상이 온통 새하얗게 변해 있었고, 그 위를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반사된 빛에 눈을 찡그리며 신경질적으로 커튼을 친다.
그로인해 생긴 어둠의 공간에 마음의 안정을 느끼며 샤워룸으로 들어간다.



"사랑해. 누구보다도ㅡ"



그녀에게 말해줬을 때 어색하지 않도록 연습을 한다.
옷을 벗으며, 머리를 감는 순간에도, 욕조에 들어가 마음을 안정시키는 때에도 끊임없이 내 입에서는 내뱉어지고 있었다.
입에 익어 실수 하지 않도록.
난 그렇게 필사적으로 연습하고 있었다.
마치 다시 없을 오늘을 기념하려는 듯ㅡ.



"나노하, 사랑ㅡ."



세안을 하다 고개를 들어 거울에 비춰진 얼굴을 보며 어김없이 떨어지려는 입을 급히 닫는다.
습기가 어려 보이지 않는 거울속의 얼굴에, 붉게 반짝이는 눈동자에 손을 들어 거울을 친다.



"넌 왜...날 좋아하니..."



거울의 인영의 얼굴을 타고 흐르는 눈동자의 색만큼이나 붉은 핏줄기에 샤워기의 물줄기로 씻겨낸다.
붉은 눈물을 흘리고 있는 거울속에 비춰진 내 모습을 바라본다.



단지 취향이 여자인 건 아닌것 같았다.



- 나랑, 왜 만나는 거야?
- 그냥.



언제나 그녀의 대답은 그냥. 이었다.
날 좋아하긴해? 라는 물음에는 그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그저 내 옆에 있을 뿐이었다.
키스를 할 때도, 손을 잡을 때도 그녀는 흠칫거리기 일 수 였다.



그럼 왜 나랑 만나고 있을까.
사람이라는게 좋아하는 마음이 커지면 더 보고싶고, 닿고싶고, 함께 있고 싶은 것이 당연한 섭리가 아닌가.
그렇기에 너의 그런 행동들은 나를 더욱 구석으로 몰아 붙이기에 충분했다.



여전히 얼굴을 타고 흐르고 있는 붉은 빗줄기에 이미 흥건하게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그대로 샤워룸을 나와 적당히 티슈를 뽑아 손등을 감싸쥔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붉게 수놓았던 피가 멈추는 듯 더이상 물들어가지 않는다.



이 기분으로 과연 그녀를 만나도 좋을까.
그녀는 내게 뭘바라고 있는 것일까. ㅡ가 먼저 머리에 맴도는 이상태로?



"나노하, 난ㅡ"



손을 들어 흐르려는 눈물을 꾹꾹 누른다.
덕분에 겨우 멈춘 피가 번지고 있었다.
아까처럼 눈가가 붉게 물든다.



"ㅡ안되, 겠네..."



그대로 손을 뻗어 폰을 잡는다.
만나면 보나마나 마음이 약해질 것이 뻔하다.
그녀의 미소가 나를 향하고 있는 순간에는 잊게 되니까, 이같은 감정이.



"미안, 역시 안되겠어."
[여보세, 응? 무슨말이야?]
"우리 그만 하자. 헤어지자고, 말하는 거야."
[여보세요?페이트? 왜그ㅡ]
"질척거리지 말고, 네 길 가라고! 나..동정하는 건 그정도면 됐으니까..."
[페잇ㅡ]



계속 해서 내 이름을 불러주는 달콤한 음성에 약해지려는 마음을 다잡고 그대로 벽쪽을 향해 손에 들고 있던 그 것을 던져버린다.
이로써 그녀와 나를 연결하는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유일한 연락수단이었던 폰이 벽에 부딪쳐 본래의 형태를 잃어버린 순간. 말이다.



그대로 침대에 눕는다.
조금 더 자야겠다.
이왕이면 이대로 계속 자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테스타로사씨? 무슨일인가요?"



갑자기 쾅쾅거리며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감았던 눈이 스르르 떠진다.
아마 아까 폰을 던질때 생각보다 요란한 소리가 나서 그런 모양이다.



별란 집주인이다.
사람 목을 조르는 것 같은 갑갑함이 느껴진다.



"아아, 괜찮ㅡ"



갑자기 몸을 관통하는 찌릿한 감각에 그대로 쓰러지고 만다.
하지만 정신만은 온전했던걸까.
언듯 연갈색의 포니테일이 잘어울리는, 항상 환하게 웃어주더 그녀의 모습이 보인 듯 하다.



"ㅡ나노....하"
"박사님?"
"됐어요, 이번에도 실패네....병원으로 데려가죠?"



박사..
실험...?
무슨 소리야.
나노하?
병원이라니....



나노하.
타카마치 나노하.
아, 타카마...치 선생님...



"선...생님...?"
"네, 다시 사랑에 빠질...준비 됐어요?"
"ㅡ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