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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먹은 일이 있으면 언제나 후회하지 않게 바로 행동으로 옮겨왔다. 생각이 깊어지면 그 순간 주저함이 생겨나고, 그 주저함을 이겨내지 못한 채 한 템포 쉬게 되는 순간 힘들게 마음 먹은 것은 결국 수포로 돌아간다. 물론 주저함이 생긴다는 것 부터가 그 결정에 대해 뒤따라오는 결과가 자신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난 이제 미뤄오던 결심을 실행하려 한다.



"미안, 이런 곳에서 보자고 해서.".
"아니야, 나도 눈에 띄고 싶지 않고"



어째서 그녀와 나는 이렇게 숨어서 만나야하는 사이가 된 것일까.
단순한 반친구. 로 보일텐데 말이다.



힐끔 바라보기만 할 뿐 이렇다할 말은 하지 않은 채 곁을 채워주기만 하는 모습이 눈에 거슬린다. 우리 꽤나 친했던 사이였음에도 시간과 공간의 제약으로, 그리고 어떠한 사건으로 인해 서로를 인지하지 못한 채 오랜 시간을 보내왔다.
그렇다고 그걸 누구에게 화풀이 할 것도 아니기에 그저 걷는다.



"저,"



하고자 했던 것이 있다.
그녀를 이렇게 만나면 하고 싶었던 말이 있다.



"고마워"



그 때 자신에게 향하던 자그마한 손에 의해 이렇게라도 그녀를 다시 마주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지금은 한참이나 커버렸지만 여전히 따뜻할 것만 같은 손 끝을 잡아 끈다.



"유짱..."



깜짝 놀란 듯 나를 곁눈질로만 살피던 그녀가 두 눈 가득 나를 담아낸다. 그리곤 곧 웃어보인다.
안심이 된다. 라는 것은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일까. 지금껏 복잡하게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던 일들이 정리되는 기분이 든다. 응어리져 무겁게 내리 누르던 모든 감정이 풀어지는 기분이 든다.



난 이 미소를 보기 위해 이렇게 다른 곳에서 나마 잘 견뎌내고 있었던 걸까.
난 이 따스함을 느끼기 위해 이렇게 기억도 희미한 이 곳에 돌아 온 것일까.
처음엔 원망만이 가득하던 이 곳이, 이제는 조금은 좋아질 것 같은 기분이다.



아슬하게 손끝에 매달려 있는 그녀의 온기를 감싸쥔다. 흠칫거리던 그녀가 여전히 미소를 띈 채 손을 말아감는다. 그 곳에만 겨우 연결되어 있던 우리의 추억을 잡아챈다.



"ㅡ그래서 그렇게 마냥 좋았나봐~"



이상하게 처음 봤을 때부터 끌렸다는 그녀.
이상하게 귀찮게만 붙어오는 그녀를 내칠 수 만은 없던 나.



"응.."



땀이 차는 듯 끈적하게 달라붙는 느낌이 손바닥 가득 느껴진다. 하지만 일부러 풀거나 하진 않는다. 인위적으로 끊어져 있던 세월에 대한 보상을 받고 싶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말을 하지 않아도, 평소처럼 떠들썩하게 행동하진 않지만 그저 즐겁고 행복하고 즐거웠다.
그저 걷고 있을 뿐인 우리였지만, 많은 시간의 공백이 있었지만 굳이 그것들을 인위적으로 채우려들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손을 잡고 있는 것 만으로 모든것이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다, 왔네..."



우리의 비어버린 시간을 매꾸기에는 부족할 뿐인 짧은 거리였지만, 그 거리로 내겐 충분했다.



"잘가, 유짱"
"응, 내일 봐"



언제나의 개궂게 웃던 모습으로 볼을 긁적이며 나를 스쳐 지나간다. 이따금씩 뒤를 바라보며 힘껏팔을 흔드는 모습에 살풋 웃으며 가슴 근처에 손을 들어 성의 표시만 한다. 그리고 그녀의 모습이 내 시아에서 사라질 때까지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나는 어느 새 지척까지 다가온 다른 인형의 기척에 돌아설 수 있었다.



홀로 할 수 없는 결정은 간혹 주위 사람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이대로, 괜찮아"



잡을 수 없이 커진 날개를 펼치고 있는 그녀를 좁기만 한 나만의 새장에 기둘 수는 없다.
새하얀 캔버스처럼 뭐든 채울 수 있는 그녀에게 이미 몸도 마음도 새까맣게 칠해진 내가 손을 델 순 없다.
애초에 나와 그녀는 너무 다른 생활을 해왔다.



"응, 됐어. 갈까, 이제?"
"조금은 눈물같은 거 흘려도 좋잖아?"
"내가 그렇게 인정 넘치고 감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던거야?"



조금전까지 느끼던 감정이 모두 거짓된 것이라는 듯, 조금전 행복에 겨워하던 모든 것들이 허상이었다는 듯 허무하게도 아무렇지 않았다.



"하고 싶어 졌어. 우리, 집으로 가자."



아무렇지 않다.
그저, 아직 손바닥을 적셔오는 온기가 심장을 감싸안아 옭죄어온다. 그저 입이 떨어지지 않고, 하늘 높이 향한 시선을 떨어뜨리지 않는다. 그저 마리짱의 긴팔에 숨어 떨리는 어깨가 보이지 않을 뿐이었다.



그러니깐, 난 아무렇지 않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