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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괜찮을까?]



갑자기 정면에 띄워진 창에는 꽤나 조심스러운 표정의 그가 비춰진다.
정면은 응시하지도 못하는 채 그답지 않게 꽤나 수줍은 표정을 일관한 채 나를 맞이하고 있던 터라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지금 이렇게
이 길기만 한 복도를 걷고 있는 것이겠지...





- 좋아해...



차마 대답하지 못한 채 멀뚱히 서 있으면 어깨를 감싸안은 팔에 더욱 힘을 가하며 듣고 싶지 않은, 아니 들을 수 없는 말을 내뱉던 오랜 친우를 밀쳐냈다.



- 하야, 테 널...좋아해...










여전히 머릿속을 헤집는 목소리에 좌우로 흔들어 되도록이면 털어내 버릴 수 있게 흔든 후 정면에 위치한 사무실로 들어선다.



"어서와, 하야데"
"응, 어쩐일?"



내게로 다가와 반갑다는 듯 인사를 해보이는 그에게 어색하게나마 미소를 보낸 후 그가 안내하는 소파에 앉는다. 여전히 겉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내 눈을 바라보지 않는 그의 모습에 신경을 쓴 채로 말이다.



"아, 저...하야테"
"응?"
"저, 그러니까 부탁이ㅡ"
"그건 내 친구인 크로노 군으로서의 부탁이야, 아니면ㅡ"
"그게 아니면 그렇게 말하지도 않았어. 사적인 부탁이야"



얼굴까지 벌게진 채로 더 열을 올리며 입을 열고 있는 그의 모습에 조금전까지 느껴졌던 불편한 마음이 사라진다. 정겨운 옛 모습을 엿봤기 때문이라 생각하며 그의 부탁이라는 것을 들어보기로 했다.
물론 내가 살풋 웃어보이자 그의 귀까지 곧 붉게 물들었지만, 이내 두어번 목을 다듬은 후 그는 입을 떼었다.





"그러니까, 지금 만나는 사람이 없으면 만나봐라. 라는거네?"
"아, 뭐. 그렇지?"
"알겠어. 날짜랑 시간 정해서 알려줘. 그럼 그것으로 용무는 끝?"
"아, 응.."
"그럼 난 볼 일이 있어서. 이만."



곧 몸을 세워 어버버거리고 있는 그에게 이번에는 어색해보이지 않을 미소을 지어보인 후 사무실을 벗어난다.
아무렇지 않은 척 능청스럽게 말을 했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았다. 그저 지금은 집에 가서 아무 생각없이 소파에 들어누워 텔레비젼에서 나오는 실없는 개그프로를 보며 웃고 싶을 뿐이었다.
너무도 한심스런 내모습에 말이다.



"ㅡ아, 최악"



그 상대에게는 미안하지만, 난 지금 그런 식으로라도 이 상황을 모면하고 싶을 뿐이었다. 그저 그사람의 순수하기만 한 감정을 갖고 노는 모양새가되어버렸지만, 난 그렇게 해서 벌을 받을지도 모르겠지만 소중한 두 친우를 잃고 싶진 않았다.










"하야테, 크로노가 하는 말...뭐야?"



그 순간 만큼은 그에게 또한 미안한 감정을 느꼈던 내자신이 저주스러웠다.



"아, 들었으면 알 거 아냐? 일종의 소개팅? 뭐, 그런기다"



아차차
나도 모르는 사이 튀어나와버린 사투리에 힐끔 정면에 서 있는 그녀를 바라보면 어째서인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듯 그 내용에 반응하고 있을 뿐이었다.



"어째서? 내...말은 뭘로ㅡ"
"아아, 투정이라면 나노하한테 가서 해"
"하야테!"



꽤나 높아진 음성에 놀라 지금껏 책상위의 모니터만을 응시하던 눈동자를 굴려 정면으로 향한다. 제법 날이 선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던 그녀는 곧 성큼성큼 내게로 다가온다.



"너, 미칫ㅡ"



두손을 억압한 채 부딪쳐오는 입술을 차마 피하지 못 한 채 받아내다 곧 분홍섬광이 머릿속을 수놓는다. 얼굴을 좌우로 움직여 그녀에게서 조금 벗어난다. 차마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손을 올려칠 수는 없었지만 그 보다 날카롭게 그녀의 가슴에 비수를 꽂아 넣는다.



"네가, 뭔데...이래?"
"내가 널, 하야테 널! 좋아ㅡ"
"그래서? 너에게 나노하 짱은?"
"그, 그게ㅡ"
"잠시 스친 바람이야. 페이트짱이 나노하짱에게 등을 돌린다니...있을 수 있는 이야기야?"
"하야테..."



어렵사리 손을 움직여 그녀의 목을 감싸안는다. 등을 천천히 위에서 아래로 시계방향으로 움직인다.



"자자, 착한아이는 집으로 갈 시간이야. 조심히 들어가, 페이트짱"



그렇게 목에서 팔을 풀어 그녀를 사무실 밖으로 인도한다. 살며시 입가에 번지는 씁쓸한 미소를 풀어낸 채 그녀의 등을 밀어 내게서 떼어 놓는다. 돌아서 나를 바라보기전에, 그녀의 적안이 내눈동자에 박히기 전에 서둘러 문을 닫으며 튀어 나가려는 마음을 다잡는다.



그렇게 그녀를 한 발짝 밖으로 밀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