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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괜찮아?



뜬금없이 영화를 보자고 연락을 해왔던 오랜 친우.
알겠다며 받아든 시간은 꽤나 촉박하게 나의 발목을 끌고 있었다. 지금부터 밟아도 영화시간까지 아슬아슬하게 도착할 것을 알기에 일단 손에 잡고 있던 서류를 내려 놓은 채 급히 가방을 챙겨든다.



"페이트씨 들어가세요?"
"아아, 하야테가 불러서 가봐야 할 거 같아."
"그거라면 그렇겠네요. 여간해선 호출을 하진 않는 사람이잖아요, 하야테씨는ㅡ"



굳이 이렇다할 변명거리를 늘려놓지 않아도 될 정도로 두터운 신의가 깃든 눈동자에 고개만 끄덕이곤 곧장 오피스를 빠져나온다. 물론 한 가지의 방어선을 돌파해야 하지만...



"어? 마침 오피스로 가려던 참인데 퇴근이 빠르네?"
"아, 응...약속이ㅡ"
"누군데?"
"그, 일전에 현장에서ㅡ"
"응, 알겠어."



평소와는 달리 더 이상 내게 답을 요하지 않는 모습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응? 반문을 하자, 팔짱을 끼곤 페이트짱 거짓말에 서투니까. 하며 어색하게 입고리를 당기고 있었다. 그러며 내 등을 밀어준다. 셔츠에 립스틱자국만 남겨오지마 그러면 되니까. 뒤통수에 대고 내뱉는 그녀의 말의 뜻을 이해하곤 발을 움직이며 뒷걸음질로 그녀를 향해 엄지와 새끼손가락만을 펴 귀에 가져가며 전화하겠다는 제스쳐를 남긴 채 완전히 몸을 돌려 세워 달려 나간다.



이런 답답한 인간관계가 나를 옭아매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을까. 하루하루 나를 놓아주는 듯, 내 개인의 자유를 생각하는 척 행동하면서 실제적으론 내 행동을 속박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을까.



하지만 더 싫은 것은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행동하는 나.
내가 지금껏 힘들게 쌓아 올린 것을 무너뜨릴 수도 있기 때문에 참을 수 밖에 없는 나.
공든 탑을 그저 그상태 그대로 보존하고 싶은 간절한 내 욕심과 바람.



이미 마음은 떠난 주제에 말이다.





"여기ㅡ"
"미안, 늦었지?"
"내가 다급하게 부른것도 사실이니까."



손을 흔들고 있는 하야테의 곁으로 사람들을 해치며 들어서면 옆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팝콘이 눈에 들어온다.



"보나마나 급하게 오느라 밥도 못 먹었을테니, 요기라도 해."
"응"



내게 들려진 팝콘을 먹고 있는데, 이게 또 내가 좋아하는 치즈팝콘.
가끔 생각하지만 이런 세심한 배려는 그녀랑 참 안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내 눈에는 물론 다른 사람의 눈에 그녀는 늘 아무렴 어때. 란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실상은 전혀 다르지만 말이다.



"어?"



팝콘을 먹다보니 목이 메여 옆에 놓여있는 음료수잔을 들어 급히 스트로우에 입을 대고 음료를 힘껏 빨아들이자 특유의 톡쏘는 맛이 아닌 달콤한 맛이 혀에 감돈다.



"복숭아 아이스티야, 페이트짱 탄산에 약하니까."
"아, 응. 고마워."



이런 행동이 닫혀있던 마음을 두드리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알까.
그저 어색함에 뒷머리를 긁적이며 입안에 맴도는 음료를 음미한다.



"아! 이거 한번 들어봐"
"응?"



눈동자를 굴리며 언제 상영관으로 입장을 하나 기다리고 있으면 갑자기 소음을 뚫고 음악소리가 감싸안는다.



"요즘 좋아하는 노랜데, 마음이 차분해지지 않아?"
"아, 응ㅡ"



말은 저렇게 했지만 내 귀에는 아무것도 들려오지 않았다. 순간 주변의 소음을 사라지게 만들던 음악소리마저 터질듯 두근대고 있는 심장고동소리에 묻혔으니까.
무엇보다...



"ㅡ페이트짱?"
"응?"
"어디 안좋은거 아니지? 얼굴이 빨간데..."



닿아오려는 손길을 기분나쁘지 않게 빗겨내며 아직까지 그녀의 손길이 닿아 열을 발산하는 귀가를 머릿카락으로 덮어 가리며 자리에서 몸을 세운다.



"입장, 하는 거 같지?"
"들어갈까?"
"응"


먼저 발을 움직였지만 곧 표가 있는 그녀가 내옆에 서줄때까지 기다린다. 십여센티 아래에 위치한 얼굴을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돌려 입장하는 그녀의 뒤를 따른다. 그저 그녀의 옷깃이 손끝에 닿았을 뿐인데 화상을 입은 듯 쓰라려온다. 손 끝이 아닌, 가슴 한 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