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맞출 수 있겠어?]
"응, 맞출 수 있을 것 같아"
[그렇게 무리하지 않아돗-]
"갈 수 있어. 이따 봐."



뭐라 떠들어대는 타카미나의 목소리를 창 문 너머로 흘려버린다. 공기중에 떠다니는 눈에 보일리 없는 작은 입자 하나하나 타카미나의 얼굴이 떠다니며 괴롭힌다. 부쩍 개인 스케쥴이 많아져 함께 있는 시간이 줄었다며 투덜대는 모습부터 너무 무리하지 말라며 자뭇 진지한 모습까지 주위를 맴돈다.



물론 나를 걱정해서 하는 소리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뭐든 그 정도가 지나치면 듣는 사람 입장에선 여간 괴롭다. 그 진심을 알고 있어도 말이다.
바로 조금전처럼 1절만 하면 될 것을 2절, 3절까지 읊어내곤 도돌이표마냥 다시 되돌아가는 모양새에 처음 고마웠던 마음이 눈녹듯 사라진다. 마치 입안에 고맙다는 말이 솜사탕이 되어 녹아 없어지 듯 말이다.



"다, 코지마씨를 걱정해서 그러는 거에요."
"알아요, 알지만.....뭐야? 타카미나랑 통화했어요?"



머쓱하니 뒷머리를 긁적이던 그는 희미하게 웃어보인 후 사이드를 내린다. 집으로 데려가라고 했지만... 반토막 난 말을 입안으로 삼키며 룸미러를 통해 눈을 마주해온다.



"제 성격 아시죠?"



따로 들려오는 대답은 없지만, 익숙하게 움직이는 자동차 밖으로 보이는 이정표가 내 목적지를 일러주고 있었다.





"말은 참 안들어요."
"일, 이년 겪어봤어?"
"어련하실까. 근데 어쩌나...이미 왔다갔는데."



다 알고 있다는 듯 팔짱을 끼고 앉아 눈을 빗겨내며 입을 떼고 있는 타카미나였고, 그녀가 말하고 있는 주체를 알고 있는 나는 괜히 아무렇지 않은 척 흘겨버린다. 뭐 어째냐는 듯, 굳이 그 거랑 무슨 상관이냐는 듯 그렇게 말이다.
그런데 어째서 내게 와 인사를 하는 후배들이 하나같이 짜 맞추기라도 했다는 듯 그런 말을 뱉어낼 수 있는지 의문이었다.



"오오시마씨 헤어 바꾸고 분위기도 바뀌었지?"



지금도.
평소라면 전혀 대화의 주제가 될 리 없는 그녀의 이름이 사방에서 언급되고 있었다. 이 것으로 아까 왔다갔다는 것은 보나마나 그녀를 뜻하는 것이 분명했다.



물론 그녀가 드라마로 인해 헤어를 바꾼 것은 일찍이 접했던 사실이었다. 근래 시작된 SNS 활동으로 아마 전세계의 그녀 팬들이라면 알법한 사실이기도 했다. 그런 사실을 굳이 오늘 이자리에어 다시 언급되고 있는 것은 왜인지 썩 유쾌하진 않았다.
그녀의 차기작이 그만큼 주목받고 있는 것이고, 여러사람의 입에 오르 내리며 확실히 인지도도 여배우로써 높이고 있는 사실임에 틀림없지만, 한 편으론 짜증이 났다.



"뭐가 그렇게 심통 나셨을까?"
"뭐야, 타카미나 기분나빠."



오랜 시간을 함께 한 탓일까. 분명 숨긴다고 숨겼는데 너무도 훤히 꿰뚫어보는 것에 덜컥 겁이나 무릎에 올려두었던 잡지로 갑자기 얼굴을 내게로 들이미는 다카미나의 얼굴을 장난스레 밀어내며 자리에서 몸을 세운다. 스르륵 풀릴 것 같던 손을 잡아채와 자신에게로 돌려세우는 여전히 얼굴은 잡지로 가려진 채 앉아있던 그녀의 양어깨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저..."
"조금 후에 바로 본방 들어갈꺼니까."



곧 들어난 얼굴은 마치 열이라도 나는 듯 두 눈이 붉었다. 제대로 내게 마주해오지 못한 채 눈동자만이 아슬하니 눈가를 스친다. 여전히 잡혀있는 손끝을 매만지며 결국엔 고개조차 들지 못하는 모습에 안되겠다싶어 급히 밖으로 이끈다.



"너야말로 똑바로 행동해줘"
"그, 알지만..."
"무슨 죽을병걸린 것도 아니고. 정말 이래서 너한테만은 숨기고 싶었다니깐? 그 날 전화를 하-"
"숨기지마."



여전히 차마 놓지 못한 채 연결되어 있던 손을 타고 그녀의 심정이 전달되기라도 하는 듯 갑자기 부딪혀오는 눈동자에 나도 몰래 고개를 돌려버렸다.
언제부턴가 가족보다도 보내는 시간이 많았던 동기, 멤버, 친구인 그녀는 생각보다도 내게 미치는 영향이 컸다. 그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아무렇지 않다는 듯 넘길 수가 없었다.



"나에게까지 비밀 만들지마."



그 소리가 너무도 애처롭게 귓가를 스친다.








"AKB48 20분전입니다!"




복도를 타고 울리는 스텝의 목소리에 불편했던 상황에 단비같게도 오늘따라 너무도 반가웠다. 몸을 돌려 대기실쪽으로 향하려 하면 애석하게도 여전히 붙잡혀 있던 손이 다시 한 번 내 행동을 구속한다.



"유코한테 들키고 싶지 않으면, 똑바로 행동해."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그럴 작정이야."









"수고하셨습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맞춰 손을 움직이고, 고개를 숙인다. 유독 격한 댄스신이 많은 이번싱글곡에 벌써부터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어째서인지 몸이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에 결국 방송중 크고 작은 미스를 내고 말았다. 뭐, 평소 내 이미지가 있는 탓에 그렇게 크게 구설수에 오르내리진 않았지만, 언제까지 얼렁뚱땅 넘길 수 있는 사안은 아니었다.



지금도 이렇게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것을 보면....



"일어날 수, 있겠어? 다른 사람은 다 갔으니까.."
"...응, 괜찮아. 좀 피곤-"



의자의 팔걸이에 지탱하여 몸을 세운다는 것이 그만 팔의 힘이 갑자기 빠져나가며 그대로 몸이 옆으로 기울어졌다. 그 순간에도 다시 무언가를 잡아야하다는 것보다 내일 스케쥴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새벽부터 움직이려면 피곤하겠다. 라던지의 여기서 넘어지면 내일 일에 지장이 있을것 같은데 따위의 지극히 현실을 배제한 일상적인 생각말이다.



"하루나!"



물론 나의 몸을 급히 받아주는 이가 있어 아픔도, 내일의 걱정도 하지 않아도 됐지만, 지금껏 겪어본 바로 그게 오히려 골치아파질지도 몰랐다. 어쩌면 이대로 잠들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가 정상적일 정도로



"쉿, 누가 듣겠어."
"너....정말!"
"됐고, 수선떨지말고 나가자."



오히려 강한 척 발을 내딛는다. 당장이라고 무너져 내릴듯 후들거리는 다리를 굳건하게 움직인다. 걱정을 끼친다기보다 그녀에게 약해진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 언제까지나 동등한 선상에 존재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아직 안갔어? 다행이다~"
"유짱..."
"안색이 안좋은데? 괜찮아? 아까 안무도 막 틀리고...너무 나태해진거 아니야? 그건 그렇게 총선은 뭐야..냥냥이라면 졸업하는 순간까지 출마할 줄 알았는데에~이거이거 진짜 잊어버린거나-"
"유코, 잠깐만."



갑자기 나와 그녀의 사이에 끼어들어 신이난 듯 떠들고 있는 그녀의 말을 끊은 타카미나는 조금 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경고.
나 스스로 정리를 하라는 배려.
하지만, 오랜만에 만나 반가운 건 나 또한 매한가지였다. 이대로 헤어지고 싶진 않았다. 밝게 웃어주는 미소에 거짓말같게도 온 몸을 짓누르던 쇳덩이들이 사라진 건만 같았다. 조금 더 이렇게 그녀의 미소를 마주하며 따뜻한 손길을 느끼고 싶었다. 그렇게 밤새 이야기를 하다 그녀의 어깨에 기대어 잠에 드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해버렸다. 조금전에 내일 스케쥴에 대해 걱정을 하던 내가 말이다.



"타카미나 방해돼! 예나 지금이나 우리 사이를 갈라 놓으려는 거냐!"
"유코, 장난칠 기분아니야."



한층 가라앉은 목소리에, 순간 우리를 감싸고 도는 아우라에 히죽이던 그녀는 웃음을 지운 채 의아하다는 듯 나와 타카미나를 바라본다. 우리들만 있는 이 공간에서 이렇듯 진중한 분위기를 이유없이 연출하진 않는 그녀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녀 또한 그에 상응하는 태도로 마주선다.



"유짱, 미안. 안그래도 타카미나 지금 나때문에 조금 화나있는 상태니까. 이따가 연락할께."
"응? 뭐, 응...알겠어."



지금 가장 껄끄러울 것이 뻔한 두 사람을 갈라서며 그대로 타카미나의 팔을 잡아 출구쪽으로 향한다. 주저하는 듯, 망설이는 듯 서 있는 그녀를 겨우 어르고 달래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면 긴 숨을 뱉어낸 후 반대로 내 팔과 허리를 감아온다.



"너, 무슨!"
"가만히. 지금도 겨우 서 있는 거잖아. 어차피 안보이니까 움직이지말고 기대."



그렇게 지하의 주차장까지 나를 부축하여 차에 데려다 준 후 내가 의자에 앉는 것까지 확인하더니 옆자리에 앉아 문을 닫는다. 의아함에 깊숙히 묻었던 허리를 세우며 너무도 태연하게 앉아 휴대전화를 만지작 거리는 타카미나를 바라본다.



"저는 신경쓰지 마시고, 출발해주세요."



나와 마찬가지로 의아하다는 듯 우리를 룸미러로 바라보고 있던 그는 타카미나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익숙한 동작으로 차를 움직였다.



"오늘 여러가지로 놀래키네."
"이러지 않으면 집으로 가지 않을 거잖아?"



내 눈 앞에 흔들고 있는 손에 들려있는 스마트폰. 그러니까 정확하게 내 폰을 낚아채며 조금전에 그녀가 보낸 메시지를 확인한다.



- 그 곳에서 잠깐, 괜찮아?



도대체 언제 온건지 알 수 없는 메시지의 발신처는 조금전에 난처한 표정으로 나를 보내주었던 그녀였다. 그리고 조심스러운 - 그러니까, 문자에서 조차 근심걱정 가득 품고 있어 한껏 눈섭을 양옆으로 길게 늘리며 바라볼 것 같은 모습까지 지원될 정조로 - 그 메시지에 아주 날카롭게 거절의 표현을 제대로 해줬다. 내 폰을 낚아채 간 타카미나가.



"피곤해. 라고...잘도 보내줬네."
"사실이니깐."
"걱정하고 있을 거라고. 유코를 그렇게 몰라?"
"알아. 그러니까, 참고 있는 거고."



눈을 질끈 감은 채 시트에 몸을 묻는 모습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 채 폰만을 만지작 거린다.
타카미나의 행동을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대로 풀이 죽어 있을 그녀를 알기에 가만히 있을 수도 없었다.



- 내일



"아, 나 내일 오전에 스케쥴이 없어서 냥냥집에서 오늘 묵고 갈꺼야. 그러니까 괜한 짓에 열올리지말고 조금이라도 눈붙여."
"너..."
"그 날, 보호자로 날 부른 건 너야."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입만을 움직이고 있던 목소리에는 어쩐지 조금의 분노와 함께 자책감이 어려있었다.
작은 이 아이가, 항상 큰 짐을 지고 서 있던 이 아이가 마치 자기 스스로를 힐난하고 있는 듯 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 코지마씨?



어둑하기만 한 공간에 홀로 갇혀있는 듯한 착각이 들만큼 아무것도 보이지도, 느낄 수도 없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들려온 목소리에 거짓말 같게도 눈을 떴다. 번쩍 뜨여진 두 눈에 처음 들어온 것은 너무도 밝은 조명이었다. 눈의 빛을 모두 잠식해 버리기라도 할 듯 강렬한 조명 사이로 언듯 익숙한 이의 얼굴이 비춰진다.



- 집에 연락을 했는데, 아무도 받질 않아서 우선 타카미나씨에게 연락했어요.



드문드문 들리는 단어들을 어설프니 조합을 하니 저런 문장이 되었다. 여기가 어디죠? 라고 입을 뻐금거리지만 어째서인지 내 귀에 닿는 소리라고는 알 수 없는 옹알이 정도였다.



-조금 쉬시면, 편안해지실 거에요.



전혀 상호간의 의사소통은 되지 않는다. 어렴풋 보이는 흰옷을 입은 무리들이 부산스레 내 주위를 움직이고 있었고, 희미하게 느껴지는 진한 알콜의 향연에 이 곳이 병원이구나. 라는 결론에 다다른 후 나른해지는 기운을 붙들지 못한 채 깊은 나락으로 몸을 던졌다.
















"하루나....하루-"
"유.....짜....아앙??"



너무도 낯익은 천장과 함께 내 몸을 감싸안을 듯 나긋한 음성에 몸을 세워 옆에서 애처롭다는 듯 바라보고 있는 연갈색의 눈동자가 비춰진다.



"여긴 어떻게..."
"타카미나가 갑자기 전화해서는 너 쓰러졌다고...안그래도 걱정됐는데 그런 전화가 오니까. 아까 안색이 안좋기도 했고..."
"괜찮-"
"난...의지가 안,돼?"
"무슨..!"



갑자기 높아진 음성에 룸미러로 비춰진 매니저의 눈치를 살핀다. 이대로는 민폐가 될 것 같아 더 늦기 전에 그를 보내기로 한다. 내 눈치를 살피던 그는 내일 데리러 오겠다는 말을 남기곤 유유히 그 곳을 빠져나간다.



"아직, 바람이 차니까...올라가서 얘기해.."
"괜한 투정부리는 사람대하듯 하지마..."
"그런적 없어"



말 없이 건물로 앞장서는 그녀를 따라 들어선다. 엘레베이터를 내리자 어둡던 공간에 반짝이며 조명이 들어온다. 집 앞까지 연결된 불빛의 길을 걸으며 무겁게 바닥을 차며 들려오는 발소리에 가슴 한쪽이 메여온다.



"난, 항상 너에게 의지하고 있어."



그 것은 내가 집에 들어서자 마자 한 껏 어깨를 웅크리고 있는 그녀에게 뱉어낸 소리였다.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뭘 봤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언제 너에게 거짓말 한 적 있어?"
"아니.."
"그러니까"



손가락 끝에 아슬하게 걸려있던 가방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도대체가 어디서 그런힘이 났는지 모르겠다. 조금전까지만 해도 쓰러져 자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가득했던 머릿속이 이상하게 말끔해진 기분이다. 발걸음 마저도 이상할 정도로 가벼웠다. 그녀를 이렇게 마주하고 있는 것 만으로도 모든 피로가 풀리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이제, 얼굴 좀....보여줘.."



정수리만을 보여주던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든다.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지만 큰눈 가득 머금고 있는 눈물이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았다. 내게 우는 모습은 평소에도 보여주고 싶어하지 않던 그녀였기에 그대로 팔을 벌려 감싸안는다.



"네 소식을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듣게 하지마.."



그 동안 혼자 감당하고 있던 고민들이 있었던 듯 그녀의 목소리는 한껏 가라앉아 있었다.



"그, 음.....하루나의 그러니까, 애...인은 나니까..."
"유짱도....모든 사람한테 친절하지 마."
"에? 그게 무슨 소리야?"
"카사노바같이..."
"그런적 없어!"



내 품에서 격하게 발버둥을 치다 벗어난 그녀는 굉장히 억울하다는 듯 처음에는 얼굴이 울그락불그락거리며 목소리를 높이더니, 내가 반응이 없자 이번에는 횡설수설하기에 이르렀다.



"이제야 유짱같네."
"응?"
"내 애인같다고."



갑자기 분위기를 타서 그런 말까지 하고 말았지만, 뒤늦게 찾아오는 부끄러움에 그대로 방으로 들어와 버렸다. 열이 오르고 내가 지금 무슨 낯뜨거운 말을 했는지 상황을 곱씹다보니 그제야 거실에서 웃음소리가 가득 매운다.



"냥냥? 문이 잡겼는데?"
"몰라, 소파에서 자!"
"아직 바람이 찬데?"
"보일러 올리면 되잖아! 잘꺼야. 깨우면 쫓아낼거야."



그렇게 한 동안 거실에서는 그녀의 키득거리는 소리가 계속되었다.















아...뭔지 이 알 수 없는 오글거림은...
원래는 얼굴 좀 보여줘. 여기서 끊을라고 했는데 말입니다. 그거 더 나았을지도....

암튼.
이렇게 두번째 리퀘도 끄읕!!

즐겁게 읽어주셨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나도 다른 사람의 퀄높은 글을 읽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