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

 

 

 

 

 

말리진 않았다.
몸에 무리가 갈 것 같진 않았을 뿐 아니라, 아마도 잠깐 입가에 번지던 미소를 봤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내 예상은 적중했다.



"이른 시간부터 학교야?"
"아, 깼어? 오늘부터 연습이 있어서..."



좋아죽겠다. 정도는 아니지만 적어도 생기넘치는 얼굴을 본 것 만으로 난 만족할 수 있었다.
거기다ㅡ



"유코는 같이 안해?"
"아마 기다리고 있을거야, 방금 연락왔거든."



먼저 언급하긴했지만 마음에 들진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언제나 하루나의 옆에는 그녀가 있었다.
말괄량이에 자칫 사내아이같이 보일 법한 녀석이 흙이 잔득 묻은 손으로 하루나의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을 봤을 땐 너무 놀라 그대로 그녀를 밀어내고 하루나를 내 옆으로 끌어다 놓았었다.
물론 후에 여자라는 것을 알고 조금 경계심을 풀 순 있었지만, 철들 무렵부터 그녀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 조금 질투심이 생겨 아마도 그 때부터 난 그녀를 꽤나 못마땅하게 여겼던것 같다.



"몸은...괜찮지?"
"응"



아마 때마침 유코에게서 문자가 온 건지 폰을 잠시 주무르던 하루나의 모습에 얼렁가봐, 어른들 깨시겠다. 그녀에게 길을 열어 주고 그저 물끄러미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다.



미소를,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나만이 아닌 것에 이따금 생각한다.
나만이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하지만 알고 있기에 난 바라볼 뿐이다.
몸이 알고, 머리가 생각하고, 가슴이 느끼는 답을 알기에ㅡ



"오늘도 날씨가 좋을 것 같아. 잘 다녀와."
"마리짱도 시험, 힘내. 이건 나 나가면 보고."



내 손에 무언갈 쥐어 주더니 후다닥 현관을 나선다.
손에 들린 것은 브라운 색상의 아담한 상자였으며, 핑크색리본을 풀면 그 곳에는 내 이름과 캐릭터가 새겨진 초콜릿이 있었다.
어제 늦게까지 뭘 만들더니 이것이었던 모양이다.



흔히들 아빠들이 딸에게 이런 감동을 받는 것일까.
어쩐지 그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곧 깨지긴했지만ㅡ



늦게 온다는 소리 전혀 듣질 못했음에도 10시를 향해가고 있는 시계를 봤을 때 너무 늦는다.
아침에 고마움에 작은 답례로 준비한 푸딩을 구석에 던져놓은 채 집을 나선다. 아무리 가로등이 환하고, 치한이 좋은 동네라고는 하지만 불안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얼마나 대문앞을 서성거렸을까.
멀리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그 목소리중 하나가 하루나의 것이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왜 이렇게 늦었어!"



안심했다.
하지만 난 그와함께 지금까지의 불안감을 실어 그녀를 타박하고 있었다.
전혀 그럴 마음이 없었음에도 아마, 하루나 옆에 붙어 있는 유코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유짱이 데려다줬잖아. 근데 왜 나와 있어? 공부는? 오늘 시험은 잘 봤어?"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하니까, 너나 좀 일찍 다니면 안돼? 요즘 세상이.....그러니까, 너도 그만 가봐."
"진짜! 유짱 오늘 자고 갈거야. 들어가자."



하루나의 옆에 가장 위험한 녀석이 붙어있다는 것을 간과한 내 탓이다.
물론 그녀가 있기에 안심하는 점도 없잖아 있지만, 역시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루나를 바라보는 유코의 눈빛은,
진심이라 말하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