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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펼쳐본 학창시절의 다이어리에는 그 동안 잊고 지내던 너와의 추억으로 가득했다.



8/5
유짱바보 (T^T)



한 면 한 면 내 글씨 틈틈히 쓰여있는 너의 필체에서 너를 느끼듯 한참을 눈을 떼지 못한다.



익숙한듯 낯선 향이 가득한 필적에서 그 때의 모습을 상상해보지만, 떠오르는 것은 오로지 너와의 좋지 못했던 마지막 모습이었다.





- 떠나, 안 잡아.
- 너만 지친거 아니야, 그런 무표정한 눈빛에 나를 담지마. 우리가 그런 무감각한 얼굴로 마주 볼 사인아니잖아?





눈물은 흘리지 않았었다. 우린 그저 서로의 상황에 너무도 지쳐있었다.
취직이 되지 않던 나와, 진로를 정하지 못한 너.
서로 다른 곳을 향해 등을 맞댄 순간 우리는 뒤돌지 않은 채 그대로 앞을 향해 걸어갔다. 어느정도 기반을 다질 시간이 필요했다. 서로에게 빠져 비위나 맞추며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다.
당시의 우리는. 아니, 나는 적어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은 시간을 투자할 때이고, 이 것만 끝나면 너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난 언제까지고 네가 그 곳에 서 있을 줄 알았다.





- 유짱
- 응?
- 나 결혼해.





간과했다. 너는 결혼따위에 얽매일 사람이 아니라고, 너는 부모님의 성화에 등 떠밀리지 않을 것이라고...





- 아빠, 회사일이 안풀려서..
- 뭐?
- 일종의 정략결혼?





아무렇지 않은 채 자신의 결혼소식을 알리는 너를 보며 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내집에서 내 잠옷차림을 하며 갓귀가한 내게 키스를 하며 사랑고백을 하듯 속삭이는 네게 난 어떻게 행동해야할까.



싸우기도 많이 싸웠고, 화해도 수없이 한 우리이지만 이런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물론 내가 너의 손을 놓은 채 등을 밀어주면 될 일이었지만, 그렇게 서로의 가슴에 대못을 박으면서도 끝내 놓지 못하던 손을 그저 저 한문장으로 쉽게 놓아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미련일지도 모르지만, 난 아직도 너를 사랑하니까. 라는 결론에 다다르기에 잡고 있던 손을 놓기는 커녕 좀 더 힘을 주어 잡는다.



- 사랑해, 하루나.



잡고있든 손을 내쪽으로 힘을 주어 당기면 자연스레 내쪽으로 향하는 그녀의 붉어진 얼굴에 눈고리를 휘며 가볍게 입을 맞춘다. 몇번이고 맛보았던 서로의 입술이었지만 오늘만큼 아련했던 적이 있었던가. 그저 닿아있을 뿐이지만 서로의 속을 들여다본 듯 어느때보다 뜨겁고, 씁쓸하기만 하다.



울고 있었다.
두근거리는 심장이 입술에 달리기라도 한 듯 미세하게 떨려오던 입술을 한 번 더 짧게 맛본 후 떨어진다.
차마 눈을 바라보지 못한 채 그대로 네 양어깨를 잡아 돌려세운다.



- ........................안녕.





비가 오진 않았는데, 몹시 눈가가 촉촉했던 11월의 어느날 서늘한 공기가 너무도 차갑게 나를 스쳐지나갔었다.
잘 지내고 있을까. 가끔 들던 기억도 희미해지던 요즘 왜 그날의 일은 이리도 선명하게 떠오르는지 아직도 그날의 두근거림이 입술을 타고 온 몸으로 퍼지는 기분이 든다.










그냥 쓰고 싶어서?
뭔가 쓸쓸한 겨울이라서?
2014년도 끝나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