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이글은 원래 19금이 주였을텐데..
순진한 저는 그런거 쓸 줄 모르고..
짧아진 머리에 멘붕와서는..
저런 글이..

친구님께 힘내라고 하고 싶지만..
저런글이 되버려선..흐응~










방 구조를 바꿨다. 너와 헤어진 후 홧김에 옮겼던 침대를 원래의 위치에 가져다 놓았다.
그로인해 너와 함께 마주했던 천장을 홀로 맞이한다.
괜찮을 거라, 이제는 너의 목소리마저 희미해진터라 상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물론 침대를 낑낑거리며 옮기는 순간까지도 그렇게 믿고 있었다.



- ......너를 지켜줄 거야.....



혼자는 무리였을까, 고작 침대하나 옮기고 넉다운이 되어 땀이 베어 찝찝하기만 한 옷을 벗어던진 채 침대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거짓말 같게도기억나지 않던, 잊었다 여겼던 것들이 흘러들어왔다.





악몽을 잘꾸던 나를 다독이며 재워주던 너의 모습이, 그리고 곧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벽 쪽에 끄적이며 무언갈 그리던 너의 모습이.



- 내가 없을 때 이 아이들이 너를 지켜줄 거야, 엘사.



그래.
꽤나 개궂게 웃고 있던 너였다. 그리고 정말 그 그림이 나를 지켜줄 것만 같기도 했다. 그 당시의 너는 내게 그런 존재였다.



- 뭐야, 무슨일이야? 이렇게 땀을 흘릿.....



하지만 난 두려웠다. 언제나 내곁을 떠나갔던 사람처럼 너도 내게서 떠나갈 것만 같았다. 너에게로의 감정이 깊어 질 수록 그와 비례하게 불안감 또한 높아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닿을 수가 없었다. 소문이 나면 안된다. 사람들의 시선이, 손가락이 우리에게 향하는 순간 네가 내게서 떠나갈 테니까.



- 요즘, 왜그래...?



늘 밝기만 한 너였지만, 너도 사람이었다.
언제나 표시내지 않는 너였지만, 속으로는 곪고 있었던 모양이다.
내게 소리를 높이지 않던 네가, 내게 늘 따뜻한 시선을 주던 네가 내게 화를 내고 있었다.



- 그래, 네가 다른 사람에게 들키기 싫어하는 것은...그럴 수 있다고 치고. 그래도 시선에서 부터 냉기가 느껴지고 있는 건 무슨 의도야? 그냥 가볍게 인사정도는 할 수 있잖아? 예전처럼. 그런데 지금의 넌 마치...ㅡ



차마 입밖으로 내뱉지 못한 채 여전히 불만스럽다는 듯 나를 바라보고 있는 너의 모습에 난 왜 다가가지 못했을까. 그때의 난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길래 그렇게 세상을 다 잃어버린 표정을 지었던걸까, 도대체 내가 어떤 행동을 했기에 네가 눈물을 삼기며 그 말을 곱씹고 있었던 걸까.





한참 지난 예전의 일이고 다시 되돌릴 수도, 되돌리고 싶지도 않은 일에 옆으로 몸을 돌려 앙증맞게 그려진 그림을 매만진다. 마치 그날의 네 얼굴에 흐르던 눈물을 닦아내 듯 조심스럽게 손을 움직였다. 내 손길에 맞춰 자취를 감추는 것에 알게 모르게 가슴 한 쪽 차지하고 있던 미련을 비워낸다. 그리고 마침내 말끔하게 닦여진 벽을 보며 희미하게 웃어보인다. 이제는 다른 사람의 곁에 있을 너를 축복해줄 수 있을 것 같다. 그 생각에 미치자 아직 힘이 들어가지 않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워 거실로 나선다. 테이블에 아무렇게나 던져두었던 하얀봉투를 주저하다 잡아챈다. 힘겹기만 하던 조금 전과는 달리 수월하게 이 단계까지 클리어 한 내가 대견했지만 차마 봉투 안으로 손을 집어넣을 수 있는 스킬은 습득하지 못한 채였다.



"하아, 역시 무리."



깊은 숨을 뱉어내며 도로 테이블 위로 던져버리곤 소파에 몸을 묻는다. 여전히 미련덩어리를 채 벗어내지 못해 내가 한심했다. 하지만 그런 마음과 함께 이 것을 내게 전해주라고 했을 네 심정을 몰라 난 혼란스럽기만하다.



"그래, 난 X라는 거지...여전히 쾌활하네...너 답다.."



깊게 묻어 천정만을 응시하고 있던 목을 고쳐세워 덩그러니 놓여있는 봉투에 시선을 보낸다.
지금 내가 이렇게 힘이 빠져 너덜너덜 해진 상태로 움직이지도 못한 채 앉아 있는 것은 따지고 보면 다 저것,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애초에 동문회 따위를 나가는 것이 아니었다. 아니, 따지고 보면 그렇게 오랜 시간까지 남아있질 말았어야 했다. 그냥 평소처럼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적당하게 인사를 나누다 알게모르게 그 곳을 빠져나왔어야 했다.



다시 지끈거리는 머리에 겨우 곧게 세우고 있던 척추의 힘을 빼낸다.





- 너 안나랑 꽤 친하지 않았어?
- ....그다지....



친하다는 듯 뱉어진 이름에 그 때까지 마시고 있던 술이 모두 깨는 것만 같았다. 뭐, 곧 그 만큼 도로 취해버렸지만..



- 결혼하거든, 안나랑.





역하게 올라오는 감정과 함께 가라앉은 줄 알았던 속이 다시금 요동치고 있었다.
내가 왈가왈부할 수 있는 위치는 아니었지만, 왜인지 너는 그런 것에서는 자유로울 줄 알았다. 어디서 오는 자신감인지 몰라도 적어도 난 그렇게 믿었었다.
물론 외로움을 많이 타고, 늘 사랑에 목말라있던 너였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너무 빨랐다.
겨우 24살이었다.



무엇보다도 내겐 「안나는 그렇게 생각 안하는 것 같던데, 꼭 전해주랬거든. 너한테」 라며 상기된 얼굴로 내 앞에 불쑥 내밀어진 하얀색봉투가 더 큰 충격이었다. 그리고 그 것이 바로 여전히 펼쳐보지 못한 채 내 눈앞에 당당하게 자리 차지하고 있는 저 것이었다.



"리벤질, 까나..."





- ㅡ나와 헤어지고 싶어하는 것, 같아...





또 다시 그날의 너가 내게 찾아왔다.
이미 눈물 범벅이 된 얼굴로 한글자한글자 힘겹게 뱉어내고 있는 너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나.
「네가, 원하는 건 아니고?」 지금 생각해도 온기하나 깃들지 않은 음성이 차갑게 너의 곁을 훑고 지나가는 것 같다.



그렇게 매몰차게 대한 것에 비하면 이정도면 양호했을까.
적어도 직접 건내받았다면 안갈 수도 없을테니까. 이 것에 만족해야할까.
다시 한번 손을 뻗는다. 고개를 세우지 않은 채 손만 뻗어 엉성한 자세가 되어 한참을 테이블 위를 더듬는다. 차라리 잡히지 않았으면 간절한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 듯 세번째 휘둘러진 손끝에 날카로운 파편이 심장에 박힌다.
여전히 그 자세를 고수한 채 이번에는 멈추지 않고 봉투안으로 손을 집어넣는다. 예의 두꺼운 종이가 손에 잡히고 단순에 뽑아낸다. 별로 힘들이지 않은 채 여기까지 왔지만 이제는 축늘어뜨린 목을 세워 너의 마지막을 지켜봐야한다. 하지만 어째선지 아까 손가락을 스치는 날카로움을 느낀 순간부터 빌어먹을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뿌옇게 흐려진 상태로 너와 그의 이름이 새겨져 있을 위치를 손으로 가져간다. 흐르는 눈물을 벽삼아 숨는다.





- 우리, 나중에 같이....살까?



햇살을 받은 채 활짝 웃으며 내품에 안겨 입을 열던 너의 모습이 왜 이제서야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그 동안 잊고 있던 감정이 왜 이제서야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다잊었다 여겼던 너와의 추억이 불연듯 어제일 처럼 머리속을 스치는 이유를 모르겠다.



"ㅡ미련스럽게...."



미련.
미련.
미련...



난 너를 그렇게 보내고 후회를 했던 모양이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원망했던 모양이다.
「이렇게 밀어내면 난 떠날, 수밖에....없잖아...?」 끝까지 자존심하나 없이 내게 매달리던 너를 난 매정하게 뿌리쳤다. 「그럼, 떠나...」 그리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큰충격이라는 듯 멍하니 앉아 나를 바라보던 너의 눈동자가 옅게 흔들린다. 차마 잡아끌지 못한 채 흘러내린 시트 위로 적나라한 나체가 들어온다. 내것으로 여겨지는 붉은 흔적과 함께...





그런 내가 과연 너에게 축복을 줄 수 있을까. 생각해보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무리일 수밖에 없다.
너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너에게 가장 행복한 날이 될 날을 난 볼 자신이 없다.



그대로 테이블 위로 던져버린다. 그대로 다시 깊숙히 몸을 파묻는다.
당분간은 침대에선 잘 수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