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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1 22:26
어쩌다보니 빠르게..
저도 실은 이부분을 꽤 좋아해서...

외전 쓰고 있는데....진도가 안나가네요ㅠㅠ
이제 저는....틀렸어요.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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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쉬거나 하진 않았지만, 그녀를 만날 순 없었다.
먼저 다가와 내곁에 서 있던, 고개만 돌리면 커다란 눈망울 가득 나를 채워주던 그녀가 벌써 며칠째 조용하다. 겉으로는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 그렇게 읽히지 않는 책을 눈 앞에 둔 채 시선을 묶어둔다.



분명 들었을 거다. 마리짱은 내 결심을 반대하고 있으니, 막을 생각에 또 그녀를 찾아갈 터였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그녀가 찾아오지 않는 이유는 뭘까. 이 것이 지금 내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가장 큰 문제였다.
내가 십수년을 지켜본 그녀는 화가 났지만 오히려 자신이 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한달음에 달려와 나를 불러세웠어야 했다.



"코지마씨 담임 호출."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후 지금껏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있던 생각을 잠시 접어두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오랜시간 앉아 있던 탓인지, 아니면 너무 갑작스레 많은 생각을 하느라 필요이상으로 에너지를 사용해서 인지 약간의 어지럼증이 찾아왔지만, 곧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자세를 바로 하고 교실을 나선다.



아마 어제 갑자기 말씀드린 건으로 찾으시는 거겠지 싶어 만만의 태세를 갖춘다. 안되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지금 시기는 내게도 좋은게 아니기 때문이다. 아마 그러한 이유로 일전에도 타카미나에게 내 전학 소식을 귀뜸한 것 일지도 모르겠다.



"저ㅡ"
"아, 일단 앉을까?"



마련해준 자리에 앉아 선생님을 바라보면 어디로 갈 생각이니? 걱정가득한 표정으로 물어오고, 그런 그녀에게 아직 정하진 않았어요. 다만, 여기에 있을 수 없어 결정한 것 일 뿐이에요. 그녀가 이해하지 못할 소리를 내뱉는다. 스스로가 생각해도 이건 궤변이었다.
이도 웃긴 것이 어제 갑자기 상담을 요청한 후 저 유학가요. 라고 폭탄선언을 하고는 어딘지는 몰라요. 라니, 이 얼마나 황당한 말인가 말이다. 그럼에도 전혀 당황하지 않은 채 고등부는 여기서 마치는게 좋지 않을까? 조심스레 입을 떼는 그녀였다. 아마 진심으로 내 진로를 걱정하는 게 보이지만 아까 말한 내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듯 하여 다시 실례되지 않을 정도로 답을 한다.



"더 이상 이 곳에 다닐 수가 없어요. 이유는 말씀드릴 수 없지만, 이해해주세요."
"선생님도 하루나가 생각없이 행동하진 않는다는 건 알지만, 아무래도 시기가ㅡ"
"이런 시기이기, 때문이에요."



억지.
지금껏 이런식의 두서없는 행동을 해본 적이 없었다. 상대의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은 채 자신의 의견만을 내뱉고 있는 지금은 내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관철시키기 위해 약한 모습은 내비치지 않는다. 한 동안 아무말도 하지 않은 채 내 눈만 바라보던 그녀는 곧 크게 숨을 내쉬며 내 시선을 빗겨내며 손을 뻗어 자신의 책상에 펼쳐져 있는 수첩위를 자유로이 움직인다.



"날짜는 같니?"
"조금 당겨질 것 같아요. 확실한 날짜 잡히면 말씀드릴게요."
"맘대로 해, 이 고집쟁이"



일어서서 꾸벅 인사를 한 후 돌아서면 그제야 떠올랐다는 듯 미나미한테는 진짜로 말할거야. 통보하듯 뱉으며 너도 마음대로 했으니까. 약간 심통이 난 듯 뒤돌아 앉는다.



뭐, 어차피 제일 비밀로 하고 싶었던 유코가 안 마당에 타카미나가 알기까지는 굳이 선생님이 말하지 않아도 언젠가 알게 됐을 거다. 그 시간이 조금 짧아졌을 뿐이었다.



문을 열고 나와 뒤돌아 선 채 숨을 내쉰다. 이 것으로 가장 큰 산은 넘은 셈이다. 일단 학교에서는 더 이상 내 유학건으로 왈가왈부하진 않을 테니 말이다.



"뭐야, 기어이 말을 한 거야?"



첩첩산중이란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일까. 이제 숨 좀 돌리나 했더니 어찌된 영문인지 더 가파른 산이 눈 앞에 나타났다.



"마리짱..."



약간 질렸다는 듯한 음성에 시선을 돌리면 그 곳에는 조금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는 그녀였다.
어쩌면 부모님보다도 넘기어려운 산이랄까. 한없이 내 부탁을 들어주는 것 같으면서도 깐깐하게 행동하는 사촌언니의 느닷없는 등장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 그렇게 멋대론데!"
"학교야, 잠깐ㅡ"
"학교가 뭐? 네 마음대로 하는 주제에 그건 신경쓰여?"



긴장했던 것과는 달리 얼굴까지 붉히며 입을 열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어쩐지 예전의 모습이 겹쳐져 아이러니 하게도 웃음이 나왔다.



"뭐야, 장난 아니거ㅡ"
"오랜만이야, 마리짱이 나한테 화내는거."
"그게 뭐!"



5학년땐가, 마지막으로 화내던 마리짱의 모습을 본 게...
분명 마리짱 탓은 아니었다. 단순히 내가 모처럼 놀러왔던 그녀와 헤어지기 싫어 앞서 속도를 내고 있던 외삼촌의 차를 따라 조금 뛰었다가 그 뒤로 세달 정도 학교에 갈 수 없었다.
아마도 손이 귀한 집이다보니 더 유난스러웠던 것이라 생각했다. 조금 속이 답답하고, 어지러울 뿐인데 병원에 입원을 시키고 억지로 수술실에 들어가고 그렇게 병실에 갇히는 답답한 생활을 했었다.



당시의 철이 없던 나는 학교에 보내달라며 때를 썼지만, 그날밤 문너머에서 들리는 부모님의 울음소리에 다시는 억지를 부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때 내 심장이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 손을 잡아오며 며칠사이 수척해진 얼굴로 고해성사를 하듯 조곤조곤 어린 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주셨다.
그리고 그 사건이 족쇄가 되어 그녀를 내곁에 묶어논 것이다.



"예전에는 같이 뛰어놀기도 했는데...이젠 못해."
"그런 얘기가 왜 나와!"
"그동안, 정말 미안했어. 나 알고 있었어. 원래 고등부는 다시 본가에서 다니려 했다는거, 게속 삼촌이 마리짱 불렀던 것도."
"그런 얘기하려는 게 아니라ㅡ"
"그러니까 이제부터라도 그렇게, 마리짱 꿈을 향해 걸어갔으면 좋겠어. 이게 그 이유야."



다행히 복도에 지나다니는 사람은 없다. 그렇기에 더더욱 확실히 말할 수 있었는 지도 모르겠다.



"이제 내일에는...."
"...."
"ㅡ신경쓰지마."



하지만 마침 마리짱 뒤쪽에 인형의 그림자가 비춰지기에 급히 말을 끊는다. 상대방이 이상하지 않도록 그녀에게 고개를 꾸벅숙이고는 뒤돌아 발을 움직인다.
아마 부자연스러운 내 행동에서 자신의 뒤 쪽에 누군가 이쪽으로 오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그러니 딱히 나를 잡아채거나 하진 않을 것이다.



그녀는 그런 사람이니까.



몹시 궁금하고, 이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고 싶겠지만, 그 마음 만큼이나 내 학교생활을 지켜주고 싶은 그녀의 마음 또한 깊으니까.



발길이 움직인는대로 향하다보니 어느새 운동장에 다다랐다. 뭐, 그전에 교실에 들르긴 했지만, 어떻게 안 건지 시끄럽게 떠드는 타카미나때문에 집중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건 비밀.



마침 육상부의 아이들이 제각기 몸을 풀고 있었다. 그무리에는 낯이 익은 인물도 있었다.



"유짱..."



운동장의 그녀는 그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유독 빛이 났다.
어린시절부터 제대로 달릴 수 없는 내게 그녀는 히어로였다. 학년내 가장 빠른 그녀였다. 그저 앉아 있을 뿐 제대로 즐길 수 없는 나를 위해, 항상 달리기경기가 끝난 후 내게 달려와 활짝 웃으며 메달을 주곤 했다. 또한 어김없이 고루 종목에서 성과가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인기가 많은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떻게 알고 왔는지 꺅꺅 거리는 애들 때문에 눈살이 절로 찌푸려지지만, 잘도 이런 상황에도 그 아이들을 향해 웃어주는 그녀다.



"ㅡ눈, 마주치지 않았어?"
"응"
"유코가 하루날 무시하는 경우는 뭐야?"
"글쎄, 이젠 지겨워졌나보지."
"너네 정말 싸웠어?"
"유코가 그래?"



그제야 언제부터 옆에 있었는지 모를 미짱을 바라보며 근데 언제부터 있었어? 물으면, 아까 괜찮냐고 물어봤거든? 하루나가 넋빼고 있어서 못들.......내 목소리가 작았나. 라며 내 시선을 빗겨낸다.



한참을 그저 그녀를 바라본다.
달리기 전에는 저런식으로 몸을 푸는구나. 라던가, 달리기 직전에 런 표정을 짓는 구나. 라던가, 달릴때 저런 동작으로 움직이는 구나. 라던가 를 꼼꼼히 머릿속에 새겨둔다.



언제든 다시 펴 볼 수 있도록ㅡ.



"돌아가면서 찾아오네."
"또 누가왔어?"
"어, 저뒤ㅡ"



거친발소리가 뒤쪽에서 들려왔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며칠 좀 잠잠하다 했더니...혼잣말을 중얼거리면 안절부절 못하는 미짱을 떨어뜨리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녀는 전혀 모르는 사이라는 듯.



"그냥 교실에나 있을 것이지, 여기가 어디라고! 뛰지도 못하는 게"



늘 생각하지만 저런 수준낮은 대사는 어디서 배워오는 걸까, 어설프기 짝이없는 행동거지만 봐도 그들에게 느껴지는 것은 두려움이 아닌 개그였다. 그렇기에 그런 미소가 번진 걸까. 살풋 세어나오는 미소를 구태여 지우지 않는다. 옆의 미이짱조차 갑작스런 내행동에 벙진 채 바라보고 있는다. 그리고 그 순간 내가 왜 이토록 당당한 걸까. 라는 생각이 어렴풋 스친다. 왜 평소에는 그저 무시하던 그들을 도발하려 하는 것 인가. 그저 없는 사람들인 척 스쳐 지나가면 될 일이었다. 겉으로만 으름장을 놓을 뿐 그들이 내게 직접적인 상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은 그간의 생활로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난 어째서 그들의 신경을 긁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지금, 뭐하는 짓이야."



그녀가 와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