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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이 곳은 2학년 A반.
그럼에도 이 곳에 없어야 할 인물들이 오히려 더 떠들석하니 자리를 차지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왜 남의 반에서 시끄럽게 떠드는데!"
"그걸 왜, 미네기시가 말하지?"
"그러는 선배도 여기 있을 사......흠흠!"



내 왼쪽에서 뚜닥거리는 유코랑 타카미나였고, 정면에는 미짱이 서 있고, 오른쪽의 마리짱은 옆자리의 의자까지 빼서는 앉아있었다.
때문에 옆자리의 아이는 어정쩡하게 서있는 꼴이 되어버렸지만, 전혀 일어날 기미따위 보이지 않는 마리짱이었다.

 

 

 

시끌벅적한 모습이지만, 딱히 예전과 같이 그 들을 무시하거나 피하지 않는다. 그 들도 나도 암묵적이지만 알고 있으니까.

이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그렇기 그녀들을 애써 외면하지 않는다. 이 것도 다 그들나름의 배려가 깃든 행동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내가 주목받고 있음에도 달라진 점이 있다면.



"코지마선배, 잠깐 괜찮아요?"



나를 적대적으로 대하던 아이들보다 나를 우호적으로 대하는 아이들이 늘었다는 것.
물론 그녀들이 한순간에 내게 그리 행동한 것은 아니다. 그저 이도저도 아닌, 그러니까 중간에서 눈치만 보던 아이들이 완전히 내게 마주해 서준 것이다.



그녀가 그날, 운동장에서 한바탕 소란을 피운 후로 말이다.

아마 나 혼자만이 아닌, 그녀의 마음이 고스란이 전달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괜히 긁어 오히려 부작용이 날 것 같은 모양새를 보이니 차라리 등을 돌리는 대신 손을 맞잡아 주기로 한 듯 보였다.



"아, 무슨...ㅡ"
"어딜가?"



타카미나랑 투닥거리느라 정신없을 그녀가 느닷없이 내 팔을 잡아끈다. 그야말로 전광석화같은 그녀의 행동에 나는 물론 주위의 모두가 깜짝 놀라 눈만 꿈벅인다. 물론 이 후에 마리짱이 그 팔을 쳐냈으며, 조금전보다 더 큰 목소리로 그녀를 다그치는 타카미나였지만 말이다. 어이없어 그런 이들을 뒤에 둔 채 조금전에 나를 불러 세운 아이에게 시선을 준다.



"미안, 그런데 무슨일?"
"아, 저는 1학년 B반 와타나베 마유고요. 다름이 아니라ㅡ"



와타나베라 소개한 아이는 꽤나 귀여운 외모를 갖고 있었다. 어쩐지 반짝이며 내게 부딪혀 오는 눈빛은 굉장히 부담스러웠지만 근성이 있어 보였으며, 무엇보다 겁이 없었다.
지금 내 뒤에서 느껴지는 저 눈빛들을 무시한 채 자신의 용무에 대해 착실히 말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ㅡ저...그러니까, 입부해주시겠어요?"



너무 갑작스러워서 잠시 눈 앞의 아이를 바라보고 있으면 오히려 뒤쪽이 시끄럽다.
안돼. 라고 딱 잘라 말하는 마리짱이 있었고, 절대 무리. 라며 자신의 가슴앞에 두 팔을 교차하여 엑스자를 만들며 만류하는 타카미나였으며, 그런 그녀들을 싸늘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사이 슬그머니 와타나베에게 다가가 부실...분위기가 나빠질거야. 속삭이는 미이짱이었다. 그런 그녀들을 일일이 노려봐주다 언듯 스친 연갈색의 눈동자만이 말없이 그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한발한발 힘을 주어 나와 거리를 좁혀온다. 순식간에 좁혀진 거리이지만, 좀처럼 그녀의 발걸음은 멈출 기미가 없다. 그러더니 결국은 나를 스쳐 지나가 맹랑한 1학년 후배앞에 선다.



"하루나는 안돼, 포기해."



답지않게 확실히 답하는 그녀였지만 그것보다도 다시 한 번 그녀의 입에서 뱉어진 내이름에 잠잠하던 심장에 작은 진동이 인다. 별 것 아닌 세 글자이지만 그녀의 음성에 실려 들려온 글자는 전의 어떤 것보다 무겁게 내 마음을 내리누르고 있었다.



"전, 선배님들이 아닌 코지마선배님에게 입부를 요청한건데요?"



한 마디도 지지않고 대꾸하는 모습에 놀라 눈을 크게 뜨며 바라보면 그제야 쭈빗거리며 와타나베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귓가에 뭐라 속삭이는 그녀였다. 아무렇지 않은 듯 익숙한 동작으로 하는 스킨십에 눈쌀이 찌푸려지는 것도 모른 채 헤실거리며 웃고 있는 그녀를 무시한 채 시선을 돌려 와타나베에게로 향한다. 무슨 말을 속삭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 말 때문인지 조금전까지 매섭던 눈고리가 내려가며 주위를 두리번 거리는 와타나베였으며, 곧 어디론가 발을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그 곳에 답이 있다는 듯 기분좋은 얼굴로 말이다.



"부장, 참견 해주셔야겠는데요?"



와타나베가 부장이라 칭한 자는 나와 타카미나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학교내 유코와 마찬가지로 인지도 높은, 하지만 꽤나 조용한 마에다 아츠코였다.



아, 그러고보니 뭔가의 부장이라고 학년초에 소개했던 기억이 있다.
그건이ㅡ



"앗짱이 연극부 부장?"
"뭐, 일단 맡고 있어, 근데 마유유 무슨일인데?"



읽고 있던 책 사이에 책갈피를 고이 꽂아두고는 타카미나를 힐끔 바라보더니 곧 와타나베에게 시선을 꽂는다. 계속 해보라는 시선에 예의 마이페이스 적인 눈빛이 가려진다. 역시 부장은 부장인 모양이다. 자신의 위치에서만큼은 확실히 하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열정이 있는 사람은 그 열정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따르기 마련이었다. 그건 마에다씨도 마찬가지였다.



"오오시마선배가 본인도 함께 입부시키지 않으면 코지마선배의 입부는 절대 안된다며 떼를 쓰고 계십니다."



국어책을 읽 듯 평온하게 뱉어내고 있었지만 내용이 꽤나 어이가 없어 상당한 충격을 받은 것에 비해 꽤나 안정적인 행동을 취하던 마에다씨는 곧 귀찮은데, 그러던가. 한마디 뱉고는 자신의 앞에 있을 책에 눈을 고정한다. 조금 전의 총기 넘치던 눈빛은 곧 흐려지며 알아서해. 라는 마지막 말을 뱉은 후 우리에게서 뒤돌아 선다. 그런 마에다씨의 행동에 뒤를 돌아 우리에게 시선을 준 와타나베는 그렇다는데요? 마에다씨만큼이나 성의없는 대답을 하고 있었다.



이로써 당사자의 의견따위 무시한 채 일이 성사됐다.
그후에 들어 본 바로는 원래 그녀도 캐스팅 대상이었으나, 1학년 입학 당시 이것저것 시도하기도 전에 홀라당 라크로스부에 들어간 것에 선배들이 땅을 치고 후회했다나?



아무튼 조용히 떠나기로 마음먹은 것은 이뤄지지 않을 모양이다.

 



그런데 넌 알까.
한 번도 너와는 같은 동아리활동을 못할 줄 알았어.
자유롭게 날 수 있는 너의 날개를 꺽기 싫었으니까.
그런데 이런식으로라도 함께 할 추억이 하나 더 생겨서 기쁘면서도 슬프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