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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8Q9x0

 

 

 

 

 

A clumsy lie

: 서투른 거짓말. (부제 : 권태)

 

 

 

 

 

거짓말같게도 오전까지만 해도 대지에 서 있는 모든 사람을 태워버릴 기세로 명렬하게 내리쬐던 햇살은 까맣기만한 구름사이로 그 자취를 감춘지 오래였다. 마침 잡혀버린 약속에 커튼을 치며 확인한 날씨대로 옷매무새를 잡던 나는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에 하는 수 없이 걸치고 있던 옷을 다시 정해야 할 번거로운 작업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비 올 것 같으니까, 따뜻하게 입고 와~]

 

 

 

잔뜩 성이난 내 상태를 마치 지켜보기라도 한 듯 때마침 울리는 알림소리에 소파위에 아무렇게나 자리하고 있던 폰을 든다. 미간에 약하게 자리하고 있었을 주름이 사라지며 희미한 미소가 입가에 걸리는 기분이다. 한참을 그렇게 서서 메시지를 확인한 후에 조심스레 양엄지손가락을 움직여 「 응, 너도 」 인정머리 없는 메시지를 보낸다. 솔직히 지금 마음 같아서는 「 비가 올 것 같으니까, 다음에 볼까? 」 따위의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다.

 

 

 

비가 오는 날에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쓸데없이 감성적인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여느 연인과 같지 않다는 것이, 여느 연인과는 조금 다른 사랑을 하고 있다는 것이, 그리고 그 기간이 길어짐에 서로의 마음에 약간의 균열이 생기고 있음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래, 단지 서로에게 한없이 조심스러운 단계의 우리는 연애 3년차의 권태기를 겪고 있는 커플이었다.

 

 

 

 

 

 

 

 

 

 

어느 덧 내 머릿속에서는 그녀와의 약속장소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늦지 않게 도착했다.

그녀가 좋아하는 파란 하늘을 닮은 호수가 공원의 2/3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이 작은 도시에 이례적으로 커다란 공원이었다.

서로의 집은 이 공원을 경계로 반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이 곳에서 만나 데이트를 즐겼다.

주차장에 각각 차를 주차한 후 공원이 입구에서 만나 각자의 손에 아이스크림을 든 채 그렇게 호수가 있을 곳까지 소소한 일상이야기를 하며 걷다가 마침내 공원의 중심에 도착해 호수가 두눈에 펼쳐지면 누구 할 것 없이 그 곳으로 뛰어가 근처의 벤치에 적당히 엉덩이를 붙인 채 드리워진 그늘에서 이마에 송골송골 맺혀 있을 땀을 식혔다.

 

 

 

그리고 오늘도 변함 없이 그런 일상이 흘러갈 것이었다.

이 비만 아니었다면.

 

 

 

[아니다. 그냥 집으로 갈께, 오랜만에 빈둥빈둥하자.]

 

 

 

한 참을 창밖에 어두워지는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다 다시 한 번 손안에 작은 진동과 함께 들려온 소리에 시선을 옮기면 그녀도 나와 같은 걱정을 했던 건지 약속장소를 바꾸고 있었다. 차라리 그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녀와 나는 창을 타고 흐르는 빗줄기를 바라보는 걸 좋아했다. 어두워진 세상을 비추기 위해 드리워진 조명빛과 쏟아지는 빗줄기가 만나 창에 비춰진 풍경은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작용을 했다. 뒤숭숭해진 일상에 찌들어 힘들었던 정신을 보듬어주는 것 같다고 언젠가 그녀가 읊조렸었다.

 

 

 

알겠다는 답을 보낸 후 뒤돌아 거실을 둘러본다. 그렇게 어지럽혀져 있지는 않지만, 더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 조금 몸을 움직여본다.

테이블 위에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서류더미와 한껏 입을 벌리고 있는 노트북을, 거실바닥을 어지렇게 엉켜있는 전선들을 정리한다. 그러고보니 어제 늦게까지 회사에서 마무리하지 못한 채 가지고 왔던 서류와 밤새 씨름을 했던 기억이 슬그머니 피어난다. 어째 컨디션이 저조하다 했더니, 딱히 어느 새 세상을 적시고 있는 빗방울 때문만은 아니었다.

톡톡 맑은 소리가 창에 부딪치고 그 것을 멍하니 바라보다 고개를 털며 시선을 거실로 옮겨 온다. 이대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가는 그녀가 도착한 순간까지 그저 멍하니 서 있을 것 같았다. 두 손을 올려 볼을 아프지 않게 때려본다. 깊은 숨을 뱉어내곤 부지런히 몸을 움직인다. 아, 이렇게 그녀가 온다고 들떠서 청소하는 자신이 낯설기도 하고, 새롭기도 하고.

예전에는 그녀가 방문하는 전날에는 어김없이 대청소를 행했던 자신을 기억해내곤, 씁쓸한 미소가 번진다.

 

 

 

왜,

사람의 마음은 변하는 것일까.

 

 

 

[안나, 나 10분 후면 도착해.]

 

 

 

영원은 없다. 알면서 왜 스스로 그 속에 옭아매는 것일까.

어째서 '사랑' 이라는 협소하고, 단편적인 단어에 모든 감정을 응축하여 표현하는 것일까.

 

 

 

어차피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흐려지는 기억만큼이나 서로에 대한 마음 또한 빛바래는 것은 당연지사. 하물며 영원이라는 시간 동안 그 것이 지속될리가 있을턱이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서로에 대한 애정을 과시하듯 약속한다.

'영원히 널 사랑해.' 따위의.

 

 

 

물론 이렇게 비관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나 조차도 처음에는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고자 세상에 존재하는 달콤한 말이란 말은 모두 들려줬었다. 처음에는 시큰둥하니 날 무시하기만 하던 그녀였지만, 나의 그런 노력의 댓가인건지 조금씩 내게 마음을 열고 나를 청명하기만 한 푸른 눈동자안에 가득 담아줬었다.

그렇게 노력해 3년이 지난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이 허무함은 도대체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렇게나 사랑했는데,

하루에도 안보고 못 베길 정도로 늘 눈앞에 그녀를 세워두고 싶었었는데,

헤어지는 그 순간조차 아쉬워 그녀가 사라진 그 뒷 모습조차 끝까지 지켜봤었는데,

 

 

 

지금 그녀가 내게 오고 있다는 그 메시지가 나를 답답하게 옭아매는 기분이다.

그저 내가 그만큼의 나이가 들고, 그 만큼 세상에 익숙해져서 단순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동성간의 연애로 인해 회의를 느끼고 있을 뿐일지, 아니면 난 정말로 그녀를...

 

 

 

[띵동─]

 

 

 

어떻게 알아차린 건지 그 순간 공기를 찢고 울려대는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손에 들고 있던 휴지를 대충 선반위에 올려 놓은 후 현관으로 발을 돌린다.

분명히 비밀번호를 알고 있을 그녀였지만, 언제부터인가 방문할 때에는 꼭 저런식으로 벨을 누르고 있었다. 언젠가 내가 왜 벨을 누르냐는 물음에 환한 미소를 보이며 현관문을 열었을 때 텅빈 거실의 공간이 아닌, 내가 가장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눈 앞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런 쓸쓸한 느낌은 자신의 집에 들어갈 때 느끼는 걸로 충분하다면서 나를 지나쳐 거실로 들어서며 말을 했었다. 그 기분을 스스로도 느끼고 있기 때문에 딱히 아무런 말없이 수긍했다. 물론, 지금의 나는 현관을 마주한 채 오른쪽에 부착되어 있는 거울을 보며 마음을 다잡는 시간이 생겨 감사해하고 있다. 어느정도 볼성사납게 가라앉은 분위기를 바꾸며 입고리를 당겨본다. 어색하지 않게, 서로에게 상처가 되지 않도록...

 

 

 

"어서와, 엘사"




그리고 말도 안되는 연기를 한다. 

뻔한 대본을 눈앞에 펼친채로ㅡ

 

 

 

 

 

 

 

 

 

 

 

 

 

 

 

 

 

 

 

 

간만에....

하지만 이 글은 몇주전 갑자기 쏟아지는 빗소리가 좋아서 적어내려갔던 글인데..

좀처럼 비가 내릴 생각을 안해서...걍....

날도 어둑어둑해졌겠다,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