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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그럴 수 있어?"
"무슨....말하는지 모르겠어요"
"나한테정돈 말해주지 그랬어, 미안하게."
"에에?"
"다들었어, 좋아하는 사람 있다면서."




입이 떨어지지 않아서.
written by skip




전화가 한 번쯤을 올거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언제나 그 아이쪽에서 연락이 오곤 했으니까.
게다가 이번에는 사건이라면 사건도 있었고 말이다.



"누군....지 물어봐도 돼?"
"아, 그거라면 제가 죄송하네요."
"어?"
"없어요, 그런사람."
"에엑?"
"미안해요, 아직 그런 만남 조금은 부담스러워서.....그만. 폐...끼치고말았네요."



곤란해하는 모습을 보고싶지 않아서.
나 때문에 수심이 가득한 표정을 짓게 하고 싶지 않아서.
이 아이의 얼굴에서 웃음을 빼앗아가는 짓따위
하고 싶지 않아서.



그만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가슴이 이따금씩 따끔하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할 때마다.
마음을 속이는 말을 할 때마다.
목이 메이고, 눈이 시큰거리지만, 이런표현 내가 할 수 있을리가 없다.
아이는 그저 날 좋은 언니, 의지할 수 있는 언니.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을테니까.



"아아~그렇구나. 난또, 나한테까지 숨겼다고 해서 사실은 조금 섭섭했어."



머리를 긁적이며 이제야 환하게 웃어주는 아이를 바라보는 난.
안심이 됐던걸까, 동시에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내가 보고싶어하던 그 미소다. 」라고 생각할 정도로 지금 내앞의 아이는 너무도 밝게 웃고 있었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좋게 만드는 그 미소를 말이다.


「나를 속인게 아니구나~」하면서 앞에 있던 아이스티의 빨대를 빨기 시작하는 소녀.
조금만 뻗으면 닿아버릴 위치에 있음에도 절대 손을 뻗을 수 없는 난.
여전히 이 아이를 사랑하고 있다.












"그러니까."
"왜 얘기가 그렇게 흘러가는거냐고 묻고 있는거에요"



여느때처럼 한가로이 카페의 창가쪽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내 앞에 약속시간에 조금 늦은 소녀는 미안한 듯 약간은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난 곧 별거 아니라는 듯 웃어넘겼지만, 소녀의 눈에 비친 내 표정이 썩 편안해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지금까지 계속해서 내게 이러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아무렇지 않다고 했어요, 전"
"그치만 로빈 표정이 좋지 않았단 말이야."
"조금 읽고 있던 책이 심각한 내용이라 감상에 빠져서 그랬다고 말한거 같은데요?"
"그런 정도의 표정이 아니었다고-"
"그렇다고 제가 이렇게 해야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요."
"그냥 속는셈치고 따라오라니깐?"



속는셈이라니.
딱히 이런 분위기를 싫어하는건 아니지만, 내키지 않아서 친구들끼리에서도 줄곧 피해왔던 것인데.
게다가 술을 즐기는 타입도 아니기때문에.
시끌벅적한 음악스타일도 별로고. 



"후우-"



그런 나와는 달리 뭐가 그렇게 좋은 지 한시도 입가에 미소가 멎지 않는다.
이런모습 처음이다. 」라고 생각하다보니, 아이와 이런 곳에 온 것조차가 처음이었다.
그러니 이런 아이의 모습이 생소할 수밖에.



"저, 나미?"
"...응?왜그래에?"



그러니 이 아이의 주량을 내가 모를 수밖에.



"일어나볼래요?"
"으응?"



틀렸다.
이미 눈은 풀렸고, 다리에 힘은 들어가지 않는 듯하고, 자꾸 테이블에 쓰러지려고만 한다.
정말 잠깐 화장실을 가려고 자리를 비운사이 이렇게 일이 일어날 줄이야.








처음에 들어와서 너무도 다른 세상의 모습에 조금은 놀라 자리에 안내되어 앉자마자 잠시 멍하니 있었다.
요란한 조명과 고막을 찢는 듯한 음악소리에 앞에 앉아 있던 아이의 목소리조차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다행히 룸쪽으로 안내되어 작게나마 들리기는 했지만, 매한가지였다.
기본안주가 셋팅되고, 주문한 술이 나오자마자 무섭게 마시기 시작하던 아이였다.
꽤나 좋아하는 구나. 」 라고만 생각할 뿐,
전혀 이런 경험이 없던 터라 멍하니 내 앞에 놓여있던 내 몫을 몇차례에 나눠서 마시는게 다였다.
그러다 갑자기 기분이 좋지 않아 화장실을 다녀오겠다고 한 후 자리를 비웠다.



불과 20여분사이에 일은 일어나 버린 것이다.







아무래도 혼자서는 무리라고 생각되어 어찌해야하나 곤란해하고 있던 찰라.
어디선가 낯이 익은 남자가 다가온다.
「안녕하세요, 로빈씨. 」반갑게 내게 인사를 청하는 그의 모습이 그 순간만큼은 백마탄 왕자의 모습과도 비슷했다.
「우선 좀 도와주시겠어요? 」내 눈을 따라 움직이던 그는 순간 「나미? 」하더니 역시나 남자. 그대로 번쩍 들어올린다.
그리곤 그대로 발을 움직여 우선 밖으로 움직인다.
계단을 오르고 시원한 밤공기가 얼굴을 스치운다.



"저...."
"아, 죄송해요. 여기까지좀 부탁드릴게요."



또 넋놓고 하늘을 바라보며 얼굴을 매만지는 상쾌한 기분을 느끼고 있자니, 멀뚱히 서 있던 그가 내게 말을 걸어온 것.
일단 차가 주차되어 있는 곳으로 안내를 한 후 조심스레 나미를 의자에 앉힌다.
편하게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의자를 뒤로 젖혀준 후 차문을 닫고 그와 시선을 마주한다.



"보통때같으면 차한잔 하자고 할텐데, 오늘은....아니죠?"
"아, 보시다시피..."
"그나저나 어쩌자고 저렇게 마시도록 놔둔겁니까, 꽤나 좋아하지만 약하던데 말입니다."
"자주...같이 하셨나봐요?"
"에, 에? 아뇨아뇨, 그냥 가끔."



어쩐자 꽤나 오래 알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실상이 그렇지 않아서 일까.
조금은 섭섭한 기분에 앞의 그를 돌려보낸 후 집으로 가고 싶은 기분만 들었다.
하지만, 그는 그렇지 않은 듯.
마치 이렇게 만났다는 것 자체를 굉장한 우연을 가장한 인연이라나. 그러면서 시간을 끌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같이 있고 싶은 마음.
그걸 내가 모를리 없지만, 상황판단을 잘 못한 그였다.
나미도 나미지만, 나 자체도 그닥 멀쩡하다고 볼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앞의 그에겐 미안하지만 지금 그의 말따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차를 몰아도 될까, 말까를 씨름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꽤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로빈?"
"아...괜찮아요?"
"아, 응...."
"나미 괜찮아? 어쩌자고 그렇게 마신거야"
"아.....왠일이야, 게다....."



머리가 아픈건지 이마를 짚으며 시선을 돌려 나와 그를 번갈라보던 아이.
「뭐야, 연락하고 그러는 사이? ...............면서」말의 끝을 끌며 다시 한 번 우리를 바라보려다 고개를 가누는 것조차 힘겨웠는지, 그대로 의자에 몸을 묻는 아이였다.
뭔가 오해를 하고 있어 그 것에 대해 변명을 하고 싶었지만, 지금 아니면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아 
나미가 힘들어하니, 얼른 데려다줘야겠어요. 그럼. 」라며 그에게 인사를 한 후 발을 돌렸다.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잡힐까봐 뒤도 안보고 내뺐다. 는게 맞을 것이다.



"빨리 갈테니까, 조금만 참-"
"술...했잖아."
"별로, 한모금 마셨을 뿐이니까요."
"그 것도 술은 술인데....왜, 부탁하지 그래?꽤나 헤어지기 아쉬운 듯 보였는데 말이지...."
"네?"
"그렇잖아, 이런곳에서 만난것도 그렇고....안그래도 저녀석 널 꽤나 마음에 들어했으니까."
"...."
"딱히 문제될 것도 없잖아, 사귀는 사람있는것도 아니고 왜 좋...아하는 사람도 없었다고...........로빈?"
"좀 속이 안좋아서요, 역시 무리겠어요. 미안하지만 나미만이라도 부탁해야겠어요. 다행히 아직 서있는거 같고."
"로빈은?"
"좀 있으면 괜찮아질 거 같으니까. 걱정말고 먼저 들어가겠어요?지금도 굉장히 힘들어보이니까."
"아, 아니...."



어쩐지 자꾸 그와 나를 엮으려는 이 아이의 안간힘에 아까부터 좋지 않았던 속이 뒤집히는 것만 같다.
「전 당신을 좋아한다고요. 」라는 말이 목끝까지 차올랐지만 이를 악물고 참아낸다.



이러한 관계조차 깨고 싶지 않으니까.
다른 사람과 엮으려는 당신조차 나는 좋아하니까.



그에게 이 아일 돌려보낸다.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옆자석을 바라본다.
아이가 앉아 있는 듯. 제잘거리던 목소리가 공간을 채운다.
「하아-」긴숨을 토해내며 핸들에 머리를 기댄다.
상큼한 오렌지향이 코를 간질이고, 이따금씩 울려오던 두통이 가라앉는 듯하다.
아직도 이렇게 난
그 아이로 인해 사랑하고, 아프고, 슬프고, 기쁘고, 행복한 기분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