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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뭐해?"
"별로, 왜요?"
"그냥~"


히죽 웃음을 내비치는 내 앞의 소녀를 그저 흐뭇한 미소로 답을 하며 마주앉는다.
뭐가 그렇게 좋은지 작기만한 입을 멈출줄 모른 채 계속 움직이는 모습에
그래, 흔히들 어미새가 주는 먹이를 먹겠다고 필사적으로 주둥이를 움직이는 모습과 흡사하다 하는데.
지금 내앞의 소녀는 딱 그 모양새로 앉아있다.


그리고 이렇게 아무말없이 자신만을 빤히 바라보는 날 보느라면
「왜그래에-」하며 끝을 길게 빼곤한다.
오늘도 역시나 자신이 하는 말에 호응없이 바라보고만 있는 나를 향해 삐죽 입을 내밀고는 그말을 내뱉는다.
그럼 난 또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그제야 한템포 늦은 호응을 한다.

삐죽이는 입에서「치이-」하지만, 곧 신이난 듯 입을 움직이는 소녀를 볼 수 있다.



그렇다, 난 이 아이를
좋아한다.




사랑 그 끝이 참 쓰다.
  written by skip




"그럼 잊지말고, 주말에 만나."
"알겠어요. 여기로 나오면 되나요? 몇시까지 올-"
"잠깐잠깐, 뭐가 그렇게 급해."
"아, 나도모르게 그만."


약속을 잡을 때치면 늘 이런식이다.
금방이라도 장난이라며 덮어버리고 말까봐.
「미안, 약속이 있었네.」하며 사과하며 나와의 약속을 아무렇지 않은 듯 깨버릴까봐.


언제부턴가 이렇게 일방적으로 약속장소라던가, 시간을 받아내기 일 수 였다.


내가 이런 불안한 마음인지 아는지 모르는지 앞의 소녀는 손을 꼬물거리며, 커다란 눈망울을 이리저리 굴리고 있다.
난 언제든 이 아이가 약속을 정하기만 한다면 무슨 약속이든 깰 준비가 되어있는데, 이아이에게 난 아직.
그런 관계의 사람이 아닌 모양이다.
이것저것 꼼꼼하게 재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그러다 불연듯 나를 바라보더니 「씨익-」하며 웃어보인다.


"토요일날 11시에 봐. 점심도 먹고, 영화도 보고 시간 남으면 드라이브같은거도 할 수 있고.....어때?"
"아, 뭐. 괜찮아요. 그럼 그날 볼까요?"
"응, 조심히 들어가. 참! 차는 두고 와-"
"에?에.저, 집에 가시는거면 태워드릴게요."
"아니아니, 잠시 들를곳이 있어-"
"그렇다면 어쩔 수 없고요"


「그날봐」손을 좌우로 흔들어보이더니 급하게 어디론가 발을 움직이는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아슬아슬해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한 채 내 시아에서 사라질때까지 바라보고 있노라면,
다시 한 번 그 밝음 얼굴을 보여주며 「예쁘게 하고 와-」하며 다시 발을 움직인다.
뭐가 그렇게 기분 좋은 지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질 기미따위 보이지 않는다.


어떤 모습이든.
아이가 행복하다면 난 뭐든 좋지만, 역시 그래도 내 앞에서만 환하게 웃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아직 어린 아이이기에.
아무 것도 모를 아이이기에 나
그저 이렇게라도 아이의 곁에 머무를 수 있는 지금 이 시간을 소중히 할 뿐이다.









"에?"
"자, 그러니까 인사하라고-"


그렇게 기다리기만하던 약속시간이 됐고, 아이의 전언대로 최대한 예쁘게.
아이가 나만 바라볼 수 있도록.
세상의 모든 사람이 나에게 시선을 빼앗겨버릴 정도로 그렇게.
하지만 지금 내게 다가온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지 도통 모르겠다.


수많은 책을 읽고, 나름대로 공부도 꽤 잘한다는 말을 들어왔었고,
딴에는 대학에서 학생들도 가르치고 있는 나다.
하지만, 이건.


"로빈도 참, 긴장하긴~"
"아, 아뇨."
"그럼 두 사람이 얘기 나누도록 해. 로빈이 어색해하는거 같아 걱정이지만, 그래도 이녀석 꽤 괜찮은 남자라고-"
"어, 어이."
"나도 약속이 있어서 이만."


내가 뭐라고 반박할 새도 없이 그렇게.
달콤하기만 한 오렌지향은 내게서 멀어져간다.
정말 딱.
달콤한 향에 취해 자신에게 닥칠 미래도 모른 채 그렇게 최후를 맞이하는 파리지옥에 걸린 파리....심정이랄까.


아직도 내가 여기 왜 앉아 있어야 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예의 그 남자가 내게 말을 걸어오기 전까지의 난.


멍하니 앉아 넋을 잃고 있었다고, 헤어지기 직전의 그에게서 들었었다.
어떻게 해야될지 막막해 있었다고.
꽤나 긴장을 했다라기보다는 무언가에 뒤통수를 맞은 사람의 표정으로
굉장히 상처받은 얼굴이라 쉽사리 말을 걸기가 어려웠다고.


그래.
잠깐 봐서 뭘 알겠냐고 하겠지만, 배려심은 있는 남자.
그래, 꽤 괜찮은 남자같기는 하다.
하지만, 난.


"죄송합니다, 초면에 실례가 많았네요."
"아닙니다. 이렇게 나와주셔서 전 감사할 따름이었습니다."
"아...네"
"초,초면에 무례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고, 생각없는 남자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저....저와....마....만나...주시겠스..습니까?"
"에?"
"아! 여,역시 안되겠죠? 죄,죄송합니다."


뭐가 그렇게 자신이없는걸까, 이남자.
급히 허리를 숙여 내게 사과를 해온다.
어찌할바를 모른 채 아까부터 손끝이 떨려오고 있다는 것도.
뭐가 그렇게 긴장되는지 이마에 송글맺힌 땀도.
한없이 강해 보이는 눈매를 가졌으면서 내 눈 한번 제대로 마주해오지 못하는 것도.


"후우-"


정말이지, 당신
나랑 너무 닮았네요.


그래서 더.
당신에게 상처주고 싶지가 않아요.
지금 내가 받은 이 상처의 무게를 당신에게까지 짊어지게 하고 싶지 않아요.


"죄송해요."
"아, 아닙니까. 제가 초면에 무리한 요구를 했던거죠. 몇번 더-"
"정말 죄송해요, 전. 당신을 좋아할 수 없어요."
"네?"
"나미가 몰랐나본데,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아직 짝사랑이지만요."
"아.....그러시군요...."
"죄송해요, 애초에 그런자리인줄 알았으면 나가지 않았을거에요."
"아, 아닙니다. 오늘 하루 정말 즐거웠습니다. 로빈씨도....그런 하루를 보내셨다면 그걸로 만족하죠."
"즐거웠어요, 저도."
"그럼."


최소한의 배려였을까.
난 그에게 내 뒷모습을 허락하기로 한다.


마지막까지 절대 내눈을 마주해오지 못하던 그의 시선이 마음에 걸려 모퉁이를 돌며 살짝 돌아봤지만.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그 곳에 자리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 보인다.
여전히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곧 사라질 감정이었다.
그는 오늘 하루 내게 마음을 줬던 것뿐이었다.
나와는 달리.


어쩐지 더 이상 나를 바라보지 말라는 뜻에서 방화벽 수준으로 그를 내게 소개해 준 것은 아닐까.
더 이상은 자신의 곁에 자리하지 말라는 뜻으로 그를 내 옆으로 밀어준 거은 아닐까.
더 이상은.


더 이상은 나의 이 마음조차 용서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그런 것은 아닐까.


아이에게 나의 자리는
더 이상
없다는 것일까.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것도.
그저 표현하지 않은 채 내 마음속에만 가둬두는 것도.
닿을 수 없는 거리에, 그녀의 옆에 그저 서 있는 것도.


내겐 더 이상 이 무엇도 허락하지 않는 다는 것일까.


그런데.
경멸어린 시선으로 날 바라본다고 할지라도
지금 이 순간 너무도 보고싶다.


조용하기만한 골목길에 가로등 불빛을 받으며, 주저앉는다.
그리고 어깨의 떨림이 멎지않는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난.
그 아이를 생각하고.
상처입을 것이라는 걸 알지만, 곁에 서기를 희망한다.




그렇다, 난 그 아이를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