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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숫자님께 드리는 작은 선물

* 요청 키워드 - 엘레베이터

 

 

 

めぐりあわせ

 

 

 

 

 

 

 

 

 

 

늦었다.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치는 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멍하니 누워있다 급히 몸을 세운다. 차갑게 목을 스치는 찬공기에 어깨가 움츠려 들지만 지금 이런걸 따지고 있을 겨를이 없었다. 학생회장이 된 후 첫 등교날부터 지각을 하는 우스운 꼴을 보이고 싶진 않았다.

급하게 세면을 하고, 말끔하게 다려놓은 교복을 입는다. 머리도 깔끔하게 가르마를 타 빗은 후 마지막으로 가방을 어깨에 들쳐맨 후 현관 앞에서 한 번 더 체크를 하고 현관을 나선다. 목에 두른 목도리가 무색하게 옷깃 사이를 파고 드는 찬 바람에 자연스레 움찔거리며 발의 속도를 높힌다.

 

 

 

"으으....."

 

 

 

아직 건물안에 있음에도 느껴지는 찬 바람에 절로 앓는 소리가 나온다. 발을 동동 구르며 빠르게 엘레베이터가 내 앞에 입을 열기를 기다려보지만, 꼭 이런 날 맨 꼭대기에 있을 건 뭔지 머피의 법칙이라는 것이 그대로 내게 적용되고 있는 이 상황에 애꿎은 버튼만을 계속해서 누른다. 15층 바로 위층에 멈춰진 숫자를 노려보곤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향해 두어 번 비난을 한 후 드디어 내 앞에 멈춰선 엘레베이터의 문이 활짝 열리기 전에 재빠르게 몸을 안으로 숨긴다. 아까보다 직접적으로 맞닿는 바람은 없지만 여전히 서늘한 공기에 팔짱을 낀 채 하나씩 줄어들고 있는 숫자들을 바라보다 언듯 비친 거울 속의 제 모습에 기겁을 하며 흐트러진 리본을 바로잡는다.

 

 

 

"...우에노.....상?"

"에?"

 

 

 

갑자기 들려온 옛 성에 거울에 비춰진 상대를 바라보다 익숙한 인영의 등장에 그대로 뒤 돌아 그녀를 마주한다. 서로 다른 눈동자가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미호코? 너무 놀란 나머지 이상한 소리를 낸 걸 바로 잡고자 상대의 이름을 입에 담아보면 활짝 웃으며 답을 해오는 그녀였다.

 

 

 

"여긴 왠일이야? 것보다 교복이 아닌데?"

 

 

 

그제야 상대가 평소에 보지 못했던 사복을 입고 있는 모습에 휘둥그레져 바라보다 어렵사리 입을 열면 사촌 집에 볼일이 있어서 잠깐 들렀다며, 오늘은 휴교일이라고 한다. 설마하는 마음에 15층? 이라고 운을 떼자 살짝 놀란 듯 어떻게 아셨어요? 라며 주위를 두리번 거리다 수상적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아니아니, 그 이상한 눈빛은 뭐야? 단지 아까 15층에 멈췄기 때문에 물어본거라고? 손사레를 치며 장난스레 잠깐만....나 미호코에게 그런 이미지? 뾰로통한 표정으로 응대하면 난처하다는 듯 어쩔줄 몰라 안절부절 못하는 그녀였다.

 

 

 

"풉"

"저 놀린거에요?"

 

 

 

어쩐지 그녀는 얼굴이 빨개진 채로 볼까지 빵빵하게 부풀리곤 나를 노려본다. 아하하 어색하게 뒷머리를 긁적이며 시선을 살짝 빗겨내면 어떻게 안건지 단숨에 거리를 좁힌 그녀가 내 얼굴을 붙들고 자신에게로 돌린다. 여기, 머리카락이.... 조심스럽게 내 머릿칼을 정돈해주는 그녀의 손길에 기분이 좋아진다.

 

 

 

"그럼 어제는 미호코가 내 위에서 잔거네?"

"네?"

 

 

 

아까와는 또 다른 의미로 상기된 얼굴로 나를 바라보던 그녀를 뒤로하고 힘차게 발을 내디딘다.

어쩐지 오늘 하루가 잘 풀릴 것 만 같은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