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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이후 계속해서 내 동태를 살피는 듯한 눈빛이 느껴졌다. 표시나 내질 말던가, 저렇게 대놓고 나는 지금 너를 미행중이야. 라고 광고를 해대는 그녀의 서툴음에 한숨이 입술을 비집고 세어나온다.

 

 

 

타카미나가 학급위원이었다는 사실을 간과해버렸던 탓에 나의 전학사실을 알게 됐다. 물론 내가 그렇게 말해뒸으니 떠벌리고 다닐 그녀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어쩐지 조금 불안한 마음에 다시 한 번 담임과의 독대를 해야했다. 아마 그 탓일까. 담임은 그 이후 그녀에게 내 일에 대해 일절 입을 열지 않았을테니 그 것을 참지 못한 그녀가 생각해낸 것이 바로 이 꼴 같지도 않은 미행. 이라는 결과에 다다른다.

 

 


타카미나나 유코나 누가 친구 아니랄까봐 눈에 훤하게 보이는 행동이 기가막히다.
상대가 그렇게 나온다면 이쪽도 그에 맞춰 행동해야겠지 싶어 텅비어있을, 우리가 마음놓고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그 곳의 문을 열고 들어선 후 잠시 문에서 등을 진 채 서 있는다. 그러면 역시나 한참이 지난 후 입구 근처에서 멈춰서는 발소리를 들을 수 있다.

 

 

 

"들어오지 그래?"
"냥냥?"
"시끄럽고ㅡ"

 

 

 

벌컥 열린 문 안쪽에서 무섭게 노려보고 있는 내 눈빛에 놀란건지, 아니면 단순히 갑자기 열린 문소리에 놀란건지 꽤나 놀란 듯한 표정의 그녀였고, 며칠전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기며 또다시 보건실 안쪽으로 그녀를 끌어당긴다.

 

 

 

"언제까지 그렇게 쫓아다닐 생각이었어?"
"쫓긴, 누가!"
"흐응~"

 

 

 

팔짱을 끼곤 눈을 가늘게 뜬 채 내려다보면 내 눈을 차마 마주치지 못한 채 허공을 주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캥기는게 없다는 듯 눈을 부릅 뜰 땐 언제고. 그런 바보 같은 모습에 살풋 웃어보이면 그제야 싱글거리며 내게 마주해온다. 참 알기 쉬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뭐 때문에 그러는건데?"
"아하하하...무슨말인지 도통..."

 

 

 

빈정거리며 내가 하는 말에 평소와 달리 따박따박 대꾸하는 모습이 또 생소했지만, 여전히 나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자 타카미나 한정 가학성이 물에 떨어진 잉크가 서서히 퍼져나가듯 나를 점령해가고 있었다.

이런식이라는 거지? 여전히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는 시선은 변함이 없었다. 내가 뭘- 입술을 뻐금거리며 말이라고 내뱉는 모양새가 아니꼬았던 거겠지

 

 

 

"마리짱한테 이를거야."
"에엑?"

 

 

 

나와 유코 그리고 타카미나는 어린시절부터 알고 지낸 소위 말하는 소꿉친구다.

 

 

 

"그 시스콘이 알았다가는 날 죽이려들지도 몰라. 친구의 불행을 즐기는 타입이 아니잖아, 냥냥은!"

 

 

 

아니, 그 상대가 너라면 딱히 그런것도 아니야. 차마 뱉지 못한 말이 입안을 맴돌지만 뱉어내지 못한 채 지금 이 순간, 타카미나가 하는 짓들은 워낙에 눈에 선하기 때문에 스스로도 거의 결론에 다다라 있는 답을 그녀의 입을 통해 듣고자 기다린다.

 

 

 

"왜 쫓아다니냐니깐?"
"그게ㅡ"

 

 

 

마리짱은 사촌언니다.
몸이 약했던 나와 어울려 주기 위해 방학때마다 놀러와주곤 하다가 결국 중학교부터는 아예 이쪽으로 진학을 했다. 그 일은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내 쪽에서 보답하기위해 전학이라는 결심을 한 것이다.
마리짱이 대학진학을 위해서는 본가로 옮기는게 좋겠다는 어른들의 조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절대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었지만, 그러면 내가 평생 미안해서 그 빚을 어떻게 다 갚냐고 투정 아닌 투정을 부렸더니 그제야 그러겠다고 대답해줬다.

 

 

 

그리고 그녀의 결정에 한 몫한 것이 나도 함께 할 것이라는 다짐이다. 이참에 엄마와 함께 외가 - 마리짱의  집 - 로 들어가서 일을 돕기로 했다. 할아버지 건강이 예년만 못하기 때문에 급하게 결정한 것도 없잖아있었다.
그러므로 전학 가기까지 반년도 채 남지않은 것이다.

 

 

 

그 사실을 말할 수 있을리 없다.
철들무렵부터 내곁에 있던 그들과 헤어져야 한다.
내게 웃음이었고, 눈물이었던 그들과 이별을 해야 한다.
당연히  쉽게 내린 결정은 아니다. 몇번을 생각하고, 고민한 끝에 다다른 결론이었다. 그렇기에 더 입밖으로 내뱉어 요란스레 행동하고 싶진 않았다.

 

 

 

"절대, 언제 가게 되는지 말...안해줄거지?"
"응."
"ㅡ그래서, 그런거라고. 갑자기 사라지지 않게 감시 차원으로..."

 

 

 

마주쳤던 눈가가 반짝인다고 느낀것은 단순히 창을 타고 들어오는 햇볕이 그녀의 눈에 반사됐기 때문일까. 라고 생각했지만, 슬쩍 돌려진 얼굴 아래쪽으로 분주히 움직이는 손을 보고 알아차렸다. 이게 친구다.라고ㅡ

 

 

 

"그거, 스토킹이야~난 신고할 의무가 있다고."

 

 

 

가뜩이나 가라앉아 있던 분위기 탓에  입에 맞지도 않는 농담을 뱉어낸다. 이상하게 매순간 진지하게 임하게 되는 유코와는 달리 같은 소꿉친구임에도 타카미나와 있으면 조금 가벼운 마음이 된다. 조금 더 내 속 마음을 비춰내보일 수 있는 그런 존재였다. 정말 베스트프렌드 같은. 그렇다고 유코가 불편하다거나, 항상 거짓된 태도로 그녀를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녀와의 관계는 가타부타 말이 필요없다. 그냥 그녀가 있기에 내가 이렇게 이곳, 여기에 서 있을 수 있다.

 

 

 

결국 이렇게 그녀가 없는 곳에서조차 언제나 함께였다.

그런 나를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조금전까지 울고 있던 그녀가 붉어진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마리코사마보다 경찰이 상대하기 쉬울지도..."

 

 

 

푸스스- 잔득 얼어있던 안면근육에 작은 파동이 인다. 일부러 그러는 걸까 싶지만, 진지하게 말하는 그녀의 눈빛엔 거짓은 없어 보여서 그게 또 의문이었다. 도대체 어떤 이미지야, 마리짱은...

 

 

 

"여기는 몸이 안좋은 학생들이 있는 곳이지 수다 떨라고 있는 곳이 아니에요."

 

 

 

갑자기 둘사이를 갈라놓은 조금 차분한 음성이 들리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면 하얀가운이 제법 잘 어울리는 보건선생님이 서 있었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죄송합니다. 라고 말하며 그 곳을 벗어난다.

 

 

 

"왜, 거기서나와? 어디 안 좋아?"

 

 

 

문을 닫으며 돌아서 교실쪽으로 발을 돌리면, 그 곳에는 꽤나 놀란듯한 표정으로 서 있는 시노다 선배가 서 있다.

홀로 있는 것도 아니고, 일단은 학급위원장을 맡고 있는 타카미나와 함께 있다보니 그 오해는 점점 불어나고 있었다. 한달음에 내곁으로 다가와 서는 그녀는 곧 어깨에 양 손을 집고 한뼘은 차이나는 신장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난 아무렇지않게 말을 걸어오는 그녀에게 작은 목소리로 곁눈질 하는 것도 잊지 않은 채 학교에선 아는 척 하지 말랬잖아! 입을 연다. 물론 되돌아 오는 말은 그러게 왜 거기서 나와! 걱정되게! 되려 면박을 주었지만 말이다.

내가 그렇게 약하지 않다는 것은 그녀들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다. 바짝 마른 나뭇가지가 바스라지는 것마냥 무슨일이 벌어질까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오히려 내 몸이 좀 먹어 들어가는 듯 하다.

아니, 어쩌면 그들은 내 몸이 성치 않기 때문에 내 곁에 이렇듯 머물고 있는 것일까. 내가 그녀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을 그 때가 오면 언제그랬냐는 듯 뒤돌아서서 자신들의 길을 걸어갈까. 어린 시절부터 성치않던 몸이 오히려 족쇄로 그들을 내 곁에 묶어 두려 하는 것을 아닐까.

 

 

 

끔찍하다, 나란 여자.

 

 

내가 늘 어떤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는 내 주위의 사람들은 어째서 하나같이 바보인걸까.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여기 또.

 

 

 

"마리코사마 제발을, 밟고...계시는데요..."
"아, 미안"

 

 

 

 

얼굴표정하나 안뀌고 아, 미안. 이라니, 것보다 전혀 미안해보이는 얼굴이 아닌데 말이다. 게다가 전혀 타카미나와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있다. 슬쩍 흘겨본 이후 여전히 내 어깨에 손을 짚은 채 두 눈은 나를 응시하고 있을 뿐이다.

아마 이런 무신경한 말투때문에 사람들이 어려워하나...싶다가도 작년까진 라크로스부를 이끌면서 많은 사람과 제대로 교감하고 있었지 않은가. 항상 내앞에서 보이는 모습이라곤 얼빠진 모습뿐이라 그런 그녀를 상상할 수 없지만, 항상 내 곁에서만 보여주던 허당끼 가득한 모습. 그것과는 다른 모습이 숨어있는 모양이다.

 

 

 

"아무튼 별거아니니까, 신경쓰지말고 교실로 돌아가주시죠. 시노다 선배?"
"그ㅡ...알겠어."

 

 

 

또 애마냥 뭐라고 반박하려던 건지 일순 어깨에 가해지는 손아귀의 힘에 슬쩍 눈이 찡그리는 것을 본 건지, 그녀가 순순히 물러나준다. 늘 나에게 만큼은 한발 물러선 그녀이기에 익숙한 모습이지만, 그게 또 타카미나에겐 충격적인 모습이었을까. 사라지는 시노다 선배의 뒷모습을 보며 전혀 움직일 기미가 없다.

 

 

 

"점심시간 끝나가, 돌아가자."

 

 

 

한번 툭쳐서 정신세계를 이쪽으로 복귀시키면 절.대.로 우리 사이좋게 지내자. 의미를 알 수없는 말을 내뱉으며 내 두손을 꽉 움켜잡는다. 그녀에게는 이렇듯 마리짱이라는 거대한 나무아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우러러보고 있을 뿐이었다. 내게도 그런 때가 있었다. 지금은 다 무용지물이 되어버렸지만, 한 없이 시선을 맞춰주며 앞에서 끌어주는 것이 아닌 함께 나란히 서서 앞을 보며 걷고 싶었다. 단지 난 그런 평등한 관계를 마리짱과 이어가고 싶었다. 그저 평범한 여느 사촌지간의 모습처럼 나도 그런 관계를 나누고 싶었다.

 

 

 

그런 내마음도 모른 채 역시 냥냥이 최종보스였구나. 웃어보이는 모습에 뭐라는거야, 돌아갈래. 하며 매몰차게 손을 뿌리치며 걸어나가고, 뒤에 서 있던 타카미나는 곧 냥냥~ 하며 따라붙는다.

 

 

 

오늘도 지극히 평범한 하루를 보냈다고 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에서 오는 오류였을까. 여느때처럼 흘러갈 것만 같던 하루는 그리 쉽지많은 않았다.

 

 

 

피곤하기만한 점심시간을 보낸 후 자리에 앉아 교과서를 꺼내기 위해 서랍에 손을 넣는다. 그 순간 미묘한 느낌의 물체가 손에 잡히고 곧 나는 왔구나. 하며 그 것을 꺼내든다.

 

 

 

21세기에 이런 질낮은 장난을 치는 학생들을 어떻게 상대해야할까. 가만히 서랍에서 나온 것을 바라본다. 정말 딱 애들장난. 내 책을 난도질 -힘도 좋아, 어떻게 이렇게 잘라놨을까싶다.- 한 후 알 수 없을 빨간 액체로 뒤집어 씌웠으며 - 아마 유성물감통에 빠뜨렸겠지, 덕분에 지금 내 손 꼴이...거기다 흘러내린 액체가 채마르지 않았기 때문에 치마자락에 뚝뚝- 자세히 보니 책상에도. 절로 한숨이 나온다. 곧 수업이 시작할테니 책상채로 버리는게 빠를거같아, 그대로 낑낑거리며 책상을 옮기고 있으면 창가쪽의 무리들이 신이난 듯 키득거리는걸 발견할 수 있었다.

 

 

 

책상이 없으니 수업은 물건너 간 것 같고, 보건실은 아까 너무 멀쩡한 모습을 보여줘서 갈 수 없고, 그냥 집에나 가자는 심산으로 가방을 든다. 그리고 마침 아까 교실로 돌아오다 담임에게 붙들렸던 타카미나가 교실로 들어서고 있었고, 막 교실을 나가려는 나와 마주하고 말았다.

 

 

 

"어디, 가?"
"집에"
"집..에?"

 

 

 

뭐가 그렇게 불안한지 심하게 흔들리는 눈빛에 나도몰래 숨을 토해낸 후 진짜 집에 가는거야, 보시다시피 책상이 엉망이라... 하지만, 여전히 불안한 시선을 못감추는 그녀에게 조심스레 다가가 귓가에 속삭인다. 전학갈 때, 말해줄께. 라고. 그제야 안심한 듯한 그녀를 둔 채 교실을 나서려는데 얼굴이 점점 굳어지던 그녀가 내 팔을 잡아끈다. 교실 구석에 너저분하게 자리하고 이을 내 책상을 본 것이겠지 싶어 고개만 틀어 시선을 마주한다.

 

 

 

"또, 야?"

 

 

 

평소의 그녀답지않게 꽤나 낮게 읇조린 말은 수업준비로 분주한 교실안에는 다행히 들리지 않은 모양이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것을 보니.

그렇다고 그녀에게 자초지종을 다 말할 수만은 없었다. 일단 심한 장난질에 가담하고 있는 일원도 일단 그녀가 보듬고, 이끌어아야할 학급의 인원이었다. 단지 개인적인 감상에 휘말려 일방적인 태도를 취할 수는 없는 위치였다. 그렇기에 난 일일이 그들의 진상을 고하지는 않았다. 또한, 그녀들도 타카미나와 나의 관계를 알고 있기 때문에 우습게도 그녀가 있을 때는 이 같은 장난을 하지 않았다.

정말 애같다.

애들에게는 그에 걸맞는 대응을 해줘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기에 재미없는 장난감을 연기하기로 한 채 그들이 행하는 일련의 행동에 대해 절대 반응하지 않았다.

 

 

 

"서랍에 둔 걸 깜박했어, 별거 아냐."
"너...."

 

 

 

큰 소동을 벌이기 싫다는 걸 알아준걸까, 그녀는 움켜잡았던 손목을 놔주었다. 그리고.

 

 

 

"ㅡ미안"

 

 

 

내게만 들릴 정도로 속삭인 그녀가 교실안으로 들어간다.

분명 바본데, 이런것도 잘 몰랐으면 좋겠는데, 쓸데없이 이런일에는 예민해져서는.

 

 

 

교실로 들어서는 축쳐진 타카미나의 어깨를 바라보다 곧 교실을 문을 닫고 발을 돌리면, 그 곳에는 또 다른 바보가 아까 타카미나와 같은 얼굴을 하고 서 있다.

 

 

 

"...옷이, 왜그래?"
"유...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