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코 오늘 시간 돼?" "응?" "숙제 같이 하자고──" "아.....저." 그 순간 어째서 너는 그녀를 바라보는 거니. "무슨, 약속이라도 있어?" "아니, 그건 아닌데......" "그럼 이따가 같이 가자." "아......응." 차마 바라보지 못하지만 그 시선의 끝이 떨리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린다. 나의 부탁을 이렇듯 거절하지 않던 너였기에 지금 이 순간이 어색하게만 느껴지지만 딱히 그 것을 표현하지는 않는다. 그 것을 표현하는 순간 어쩐지 난 인정할 수밖에 없으니까. "뭐야, 진짜 약속있어?" "아니야, 알겠어." 왜 난 이렇듯 집착하고 있을까. 괜스레 그녀의 어깨동무를 하며 돌려신 시선을 내게로 돌려낸다. 그 순간이라도 그녀에게 꽂혀 있는 것조차 난 어째서인지 이토록 질투를 하고 있었다..
"같잖은 협박이 통할 줄은 몰랐네." "됐으니까, 이제 그만 손 좀 떼지?" 의도치 않은 체육수업으로 지금 교실에 남아 있는 것은 나와, 얼굴을 마주하는 것조차 껄끄러운 마에다 아츠코 뿐이었다. "그래서, 내게 바라는 건 그 뿐?" 나의 책상 위를 하얀 손가락이 지나가며 호를 그려낸다. 흐응~ 허밍음을 내다 곧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입고리가 눈에 띄게 올라간다. 속이 보이는 표정을 해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잘도 이런 모습을 숨기고 살아가는 구나 싶어 마주쳤던 시선을 의도적으로 빗겨내며 몸을 세운다. 어쩐지 앉아 있는 상태에서는 내가 계속 그녀에게 밑보이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넌 나한테 너네 엄마와 잘 지내달라고 했어. 그렇지?" "그걸 이제와서 왜ㅡ" "하지만 난 그 같은 건 바라지 않아. 단지ㅡ..
오늘 따라 유난히 판서가 많았던 윤리시간이 지나고 겨우 어깨를 풀려 책상에서 몸을 세워 적당히 스트레칭을 하고 있으면, 마침 기다리다가 들어서기라도 했다는 듯 교실로 들어서고 있는 아츠코였고, 그녀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곧장 내게로 걸어온다. "아츠코?" "응?" "왜 왔어, 더 쉬지 않고." "딱히, 그게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알 수 없는 말을 남기며 나를 스쳐 내가 열심히 필기를 한 노트를 집어들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모습에 갸우뚱하며 다시 발을 옮겨 그녀의 뒤를 따르려 하면, 곧 뒷문을 들어서고 있는 그녀였다. "넌 또....왜.." "신경쓰지마." 둘 사이에 무슨일이 있었던 걸까. 요전번에도 둘이 함께 들어왔던 때가 있었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 들어서고 있던 하루나와 근심가득한 표정의 아츠코..
이사, 전학, 부모님의 이혼, 그리고 엄마의 재혼과 아빠의 외도. 아마 우리 가정이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아빠의 외도가 맞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나쁜사람' 이라고 몰아가진 않는다.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이 언제나 정체되어 있을 수는 없는 거니까. 뭐 그래도 엄마와 나를 배신한 것에는 아직 용서를 할 수 없을 것 같지만. 요며칠 사이에 너무도 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나 나의 머리는 그 모든 것을 순차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조차 버거운 듯 삐걱거리며 이렇듯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한 채 이도저도 아닌 답을 도츌하고 있었다. 형광등의 불빛이 커튼에 가려지기는 했지만,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의 기운에 기분이 좋아져 상체를 들어 침대에 걸터앉는다. 체육시간이 있는 건지 운동장의 소란스러움이 여과없이..
“요즘 무슨 고민이라도 있니?” “아니요, 수험 때문이겠죠, 슬슬 준비 해야 하고.” “다른, 건 아니고?” 얼떨결에 주번일지를 챙기러 교무실에 들어섰을 때 들려왔던 소리였다. 평소답지 않게 꽤나 진중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리드하고 있는 선생님의 모습에 역시 괜히 선생님이 아니었구나. 생각하며 나서려 하면 마침 상담이 끝난 건지 의자에서 일어나 꾸벅 허리를 굽히고 뒤돌아 나오는 상대와 눈이 마주친다. “어?” 눈이 마주치자 놀란 듯 동공이 크게 확장되었던 그녀는 곧 아무렇지 않다는 듯 나를 스쳐 지나간다. 근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뭐야? 무슨 일이라도 있어?” “신경 쓰지 말라고 했을 텐데?” “그럼 신경 쓰이게 하질 말던가.” 그녀의 팔을 잡아 억지로 앞장서서 끌고 간다. 내게서 벗어나려는 듯 손목을 ..
“학교는 괜찮지?” “그런 거, 언제는 신경 썼어?” 식사를 하고 있던 식탁의 분위기가 싸해진다. 의도하진 않지만, 의도한 듯 행동하는 내 모습이 눈에 가시처럼 보이겠지만 쉽사리 이렇다 하진 못한다. “───좀, 생각은 해봤니?” “나 지금 밥 먹고 있거든? 체해서 병원에 실려가는 꼴 보고 싶지 않으면 조용히 해주겠어?” 미안한 마음보다도 그 것을 덮어버릴 정도로 큰 배신감이 들기 때문에 난 이렇게 행동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곧, 인사하러 갈 거──” “엄마!” 신경질적으로 들고 있던 숟가락을 식탁위로 던진다. 딱히 깨지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꽤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엄마가 마음대로 정했으면, 나한테 강요하지마! 난 여기에서 지낼 테니까.” 의자가 바닥을 긁는 소리조차 내 심장을..
언제부터인가 내 시선의 끝에는 항상 그녀가 자리해 있었다. 그와 함께 한 동안은 진지하게 고민을 하기도 했다. 혹시 내 성적 취향이 남들과 조금 다른 것은 아닐까, 하는. “내일이니까, 신경 좀 끄지?” 이제는 제법 직설적인 표현을 해 보이는 그녀의 행동에 자연스레 얼굴에 미소가 걸리는 이유는 뭘까. 혹시 내가 성적취향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과 다른 감정장애, 비슷한 것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평범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무난하게 흘러가던 일상에 갑자기 뛰어들어와 모든 것을 뒤죽박죽 만들어버린 그녀에게… “오늘 방과 후에 약속이라던가 있어?” “있어도 너한테 할애할 시간은 없어.” 나에게만 삐딱한 시선을 일관하는 모습에조차 괜스레 비집고 나오는 미소가 스스로 생각해도 이상하게 느껴져 그녀에게 향하던 시선을..
아버지 회사의 지방 발령으로 전학이 불가피해졌다. 솔직히 이제 곧 3학년이기도 하고, 에스컬레이터식 학교에 다니고는 있지만 외부대학을 노리고 있던 터라 나름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이런식의 갑작스런 소식에 심기가 편하지만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쪼만하게 생겨서는 학급위원장이라고 떠들어대고 있던 아이의 갑작스런 고백까지 이어지니, 당시에는 아무렇지 않은 척 행동하고 있었지만 꽤나 충격이었다. 여고이기도 하고, 전의 학교에서도 선생님들의 눈을 피해 그런저런 모습들을 여러차례 봐왔지만 그 당사자가 본인이 된다면 그 것은 쉬이 넘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거기다 어떻게 되 먹은 학교가 오히려 선생님들까지 나서서 그런 일종의 놀이에 동참을 하는 것인지. 그러니까── "그런데, 오늘 카시와기 군이 등교를 안했는데 ..
평온할 것 만 같은 하루. 언제나 똑같이 흘러가는 하루. 하지만 그 시간은 어느 시점을 계기로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전학생이다, 사이 좋게 지내도록 해.” 이 시기에 전학생이 오는 것은 드문 일이기에 다들 휘둥그레 바라볼 뿐이었지만, 우리들의 반응이 어떻든 일단 자기의 몫을 하겠다는 의지로 교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당사자에게 손짓을 해보이면, 반쯤 열려있던 문이 다시 금 활짝 열리며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소녀가 들어서고 있었다. “코지마 하루나라고합니다. 아버지의 직업으로 불가피하게 이런 시기에 전학을 오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교탁 앞에 서 있는 것조차 어쩐지 힘겨워 보일 정도로 여리게 생긴 소녀가 꾸벅 인사를 하며 웃어 보인다. 그와 함께 올라간 입고리와 눈가에 걸리는 웃..
자정까지 남은 시간은 4시간 남짓. 이제 남은 방송은 1개. 하지만 그 것보다 더 신경쓰이는 것은 전송된 지도였다. 이 것은 아무리 봐도 이상한 그런 장소였다. 아니, 오히려 감사해야할지도 모를 장소일지도 모르겠다. 날 조급하게 만들었던 그녀가 왜 그런 곳으로 인도했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어정쩡한 길거리 한복판을 내게 보냈다면 지금보다 난 더 어쩔 줄 모른 채 우두커니 서 있지도 못했을 텐데 말이다. "유코, 준비해─" "아, 네" 아직 멍하니 휴대전화만 바라보며 물마시는 것 조차 잊고 있던 나를 흔들어 깨우는 소리에 시선을 든다. 얼떨결에 대답을 하고 있는 나는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던 그 것을 잠시 자리에 내려놓고 그 곳을 벗어난다. 평소에 장난을 좋아하는 마리코였지만, 남의 감정을 가지고 쥐락펴락할 ..
"요즘, 기운없네?" "그냥~" "뭐, 냐로의 시니컬한 반응도 좋아하지만──." 말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자꾸 내 시선을 빗겨내며 주위를 두리번 거리는 것이 신경쓰여 「 그나저나 왠일이야, 먼저 여행가자고 그러고? 」 그녀의 시선을 잡아두려 입을 연다. 나와 대화를 하는 중에는 내게 눈을 맞춰주니까. 그런 세심한 배려에 상처받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모른 채. "뭐, 할까?" "음...나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 "그래? 잠깐만." 그녀를 남겨둔 채 등을 돌리는 것이 썩 내키지는 않지만, 나를 빤히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는 이길 도리가 없다. 아쉬움에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면 나를 보며 활짝 웃어보이는 모습이다. 이런 사소한 행동에 또 기분이 좋아져서는 그대로 발을 움직인다. 하지만 창너머 보이는 그녀..
"유...ㅡ" 앞에서 유유히 걸어오던 그녀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못볼 거라도 본 듯 화들짝 놀라며 나를 스쳐 지나간다. 그런 그녀의 행동에 어색하게 올라갔던 오른손만이 잠시 허공을 배회한다. "무슨일...있어?" "ㅡ별로." 곧 그녀의 뒤에서 걷고 있던 미이짱과 눈이 마주쳤고, 능글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다가오면서 슬쩍 허공의 내 손을 잡아챈다. 이런 모습은 또 연하답지 않다고 생각하지만ㅡ. "드디어 하루나에 대한 콩깍지가 벗겨진걸까나~" 힐끔거리며 키득거리는 모습에서 조금 전의 내 생각을 수정한다. 「 여전히 애.」 라고ㅡ. 그렇게 복도를 걷고 있으면 다른 멤버와 웃고 떠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와 시선을 돌려 괜히 아무런 잘못도 없는 미이짱의 볼을 쭈욱 당겨본다. 느닷없이 공격당한 미이짱이 불평어린 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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