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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코, 잠깐만ㅡ]



──이라는 전화에 끊은 직 후 전송된 곳으로 가보았더니 어딘가 어둡고 분위기마저 칙칙한 공간의 한 쪽 구석에 마리코가 앉아 있었다.



"이런곳, 좋아하지 않잖아?"
"뭐, 가끔은ㅡ"
"그 가끔이 오늘, 나와 만나기 때문이야?"



자신의 앞에 자리하고 있던 술을 한번에 들이키곤 탁소리가 나도록 내려놓은 후 조금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주시한다.



"──잘, 아네."



그렇게 노골적으로 적대시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의 기운을 항상 뿜어내고 있으니까, 그야말로 모른다면 바보라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특히나 요즘, 올해들어 그 강도는 심해졌다.



"왜 그러는지 이제는 말해 줄 생각이야?"



내 앞으로 밀어진 잔에 적당한 양의 얼음을 채우곤 그 위에 갈색빛을 머금은 병을 기울여 채워간다. 얼음에 반사되어 조금은 바랜듯한 색감이 내 눈에 들어오고, 곧 그 것을 한 바퀴 손목의 스냅을 이용하여 흔든 후 입으로 가져간다. 몇 번 마셔보긴 했지만, 역시 내 취향은 아니기에 한 쪽 눈썹이 꿈틀거린다.



"애들 장난은 여기까지."



내 모습을 봤다는 듯 옅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잔을 채워 비워낸다. 얼음조차 채우지 않은 그 것을 단숨에 들이킨 후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은 채 내 눈을 마주해온다. 아니, 그 것을 비워내는 중에도 내게서 눈을 떼지 않는다.
여전히 위를 괴롭히고 있는 알콜의 기운에 손을 들어 가슴을 한 차례 쓸어내린 후 마침 준비되어 있는 음료에 손을 뻗는다.



"어른들의 세계에 억지로 발을 들인 벌이라고 생각해, 유코."
"무슨소린지 모르겠다고. 나한테 적대적인 이유를 설명하려던거 아니야?"
"이래서야 원──"



다시 한 번 자신의 잔에 갈색빛이 반사된다. 찰랑이는 물결이 잔이 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이 마치 비에 젖어 흘러내리는 핏빛눈물과 같이 보였던 것은 단순한 나의 착각이었었을까.



"이해할 수 있게, 똑바로 말해."
"호오, 이제야 어른이 눈빛이 됐네."
"장난치지말고."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잔을 테이블에 올려 놓은 채 몸을 소파 깊숙하게 묻는 그녀였다. 도대체가 내게 무슨말을 하려고 이렇게나 뜸을 들이고 있는지 감조차 잡히지 않기 때문에 그저 그녀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을 뿐인 나였다.



"그렇게 경계하지마, 아직 한 사람. 더와야 하는 것 뿐이니까."



다리를 반대방향으로 꼬며 지금껏 내게 향하던 눈빛이 조금 누그러들 즈음 다시 한 번 우리의 시선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운다.



"늦었어, 타카미나."
"아, 미안. 일이....근데 무슨일이야? 이런 곳 싫어하지 않아?"



역시 나와 같은 반응을 보이는 타카미나의 모습에 맞은 편에 앉아 있던 마리코는 이마를 감싸 안으며 애가 늘었어. 한탄스러운 목소리로 자신의 앞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는 우리를 바라본다.



"나는 진심이야, 언제나."
"뜬금없이 무슨소리야."
"──하루나."



이 자리에 없는 사람의 이름을 담는 정도로 뭔가 있는 것일까,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마리코에게 시선을 돌린다. 그 것이 나에게 경계적으로 행동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라는 것인지, 도무지 내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난 자세한 해설을 요구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지금부터 마리코가 할 말에 대해 알고 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일지도.



"냥냥? 그러고보니 냥냥은 안불렀어?"
"응, 진심을 알기 전에 함부로 행동할 수 없으니까."
"오늘의 마리코는 뭔가 어려워."



타카미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만, 여전히 내게 향하고 있는 눈빛은 접지 않은 채 입만을 움직이는 모습에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어떻게 알았는지, 위험을 감지한 건지 본능적으로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피하는 타카미나.
그러면 말해 줄 수 밖에 없질 않은가, 그녀가 내게 원하는 답을.



"나도, 거짓으로 행동한 적은, 없어."
"헤에─"



알았다는 듯,
내가 그렇게 대답할 것이라는 것을 예감했다는 듯 아까 채워두었던 잔을 흘러 넘긴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까처럼 아무렇지 않지는 않았다. 약간의 씁쓸함이 감도는 입가가, 괴롭다는 듯 찡그린 눈가가 그 것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그녀는 그런 사람이니까, 강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우리를 항상 떠 받치고 있던 사람.



"지금도, 라는 건가..."
"....응"
"망설임이 있어, 그건 왜야?"



그리고 기가막히게 예리한 사람.



"이제 졸업도 준비해야 하고, 여배우로서의 길도 닦아야 하고──"
"그게 네 마음에 망설임을 만들고 있는 거야? 네 앞날에는 하루나는 없는거야?"
"무슨소리──"
"하루나가 요즘 무슨 생각인지, 무엇이 빠져있고, 무엇을 즐겨 먹고 있고, 어떤 프로에 출연하고 있는지는 알아?"
"그──"



대답할 수 없었다.
대답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최근 연락을 하지 못한지가 며칠이 되었는지, 이제는 계산조차 되지 않을 정도이니까.
최근 졸업후의 거취에 대해 소속사와 계속 마찰이 있어 그 어떤 것에도 신경을 쓸 수 없었으니까.
그런 나를 걱정해서 인지, 본인이 바빠서 인지 모르겠지만 어째서인지 그녀조차 연락을 하지 않고 있어, 소소한 일상을 알 도리가 없었으니까.



"그런 주제에 왜! ..........잡고 있는거야."
"──마리코..."



그제야 가슴깊이 숨겨두었던 분노를 토해내는 그녀였다. 긴팔을 이용해 내 옷자락을 잡아채 올리고 있었다. 물론 놀라운 타이밍으로 자리에 돌아오고 있던 타카미나가 말려주었기에 그 이상의 참사는 없었지만.



"무슨일이야, 둘다."
"미안, 술이 들어가서......가야겠어. 미안, 타카미나."
"잠깐만."



이대로 보낼 수만은 없다고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해버린 탓에 나의 손은 마리코의 소맷자락을 붙들고 있었다. 그 순간 마리코의 눈빛은 그 어느때보다도 무서웠지만 놔버릴 수가 없었다. 내가 억지로 하루나를 붙들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놓을 수 없는 사람이니까.



"데려다 줄게."
"필요없어."
"내가 필요해서 그래."



억지로 잡고 있던 옷자락을 놓고 성큼성큼 앞서 걷는다. 안따라오면 어떻게 하나 순간 멈칫 거리긴 했지만, 뒤쪽에서 들려오는 가벼운 발걸음에 안심을 한 채 부지런히 발을 움직였다.



"타카미나는, 왜 부른거야?"
"왜 일까..."
"보험?"



차갑게 머리를 헝클어트리는 바람을 맞으며 아까보다 보폭을 좁히며 여전히 뒤쪽에서 천천히 움직이고 있는 마리코와 속도를 맞춘다.



"아까 같은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일종의 보험이 아닐까, 생각했어. 타카미나가 나타났을때"
"아마.....그럴지도."
"마리코답지 않게 엄청 감성적이었으니까."
"술──"
"그정도로 하루나를 생각, 하는거....지?"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를 가장 많이 좋아하는 사람이 나일 것이라고,
세상에서 그녀를 제일 아껴주는 사람은 나일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눈빛만은 진심이었다.



"그래도 놓지 않을거야, 난 7년 인걸. 쉽게 놓고 자시고 할 게 아니야. 나는"
"습관, 이라고 하고 싶은거야? 아니면─"
"내 일부. ──쯤이 되려나."



바라보진 않았지만, 일순 옆에서 느껴지던 기운이 사라지는 것에 마리코가 발을 멈춘 채 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난 더 이상 기다려주지 않았다. 보폭을 줄이는 수고를 하지 않았다. 속도를 줄이는 번거로운 짓은 하지 않았다. 그저 처음부터 나만의 독주였다는 듯 그렇게 페이스를 흐트르지 않은 채 움직일 뿐이었다. 더 이상 내게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없게 일찌감치 거리를 벌려놀 생각이다.
그렇게 생각에 미치자 주머니에 자리하고 있던 휴대전화를 꺼내 짧막하게 메시지를 남긴다. 어떤반응을 할 지 생각하자, 굳어있던 입가가 스르르 풀려간다. 무겁게 잡아끌던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고민거리가 사라지는 기분이 든다. 고작 그녀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이런 따스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난 왜 이 감정을 잊고 있었던 것일까.



발을 멈춘 후 아직 그자리에 멈춰있는 마리코에게로 발을 움직인다. 앞서 걷고 있던 내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자 의아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던 마리코와 한 걸음정도의 차이가 벌어졌을 때 비로소 발을 멈춘다.



"고마워, 마리코 덕분에 알 수 있었어. 지금 순간 가장 소중한 감정을 일깨워주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내 망설임으로 울게 될 사람이 누구인지, 그리고 내 진심이 향하는 곳이 무엇인지를."



벌어져 있던 거리를 한순간에 좁히며 가느다란 허리를 감싸안는다.



"그러니 이제는 망설이지 않을거야. 그래서 미안해."



멍하니 서 있기만 하던 마리코가 내 어깨를 감싸안는다. 그러더니 내 귓가에 나즈막히 그래도 포기는 않할거야. 꽤나 당찬말을 속삭인다. 그런다고 이제와서 나도 물러설 생각은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