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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를 듣고 있던 유난히 한가했던 토요일 오후.
딱히 스케쥴은 없었기때문에 무얼할까 고민하다가 마침 그녀도 오늘은 오프인 것이 생각나 익숙하게 번호를 눌렀다. 몇차례의 통화연결음후에 그토록 기다리던 그녀의 목소리가.



[이따 전화할께.]



며칠만에 듣는 목소리에 통화연결음이 들릴때부터 두근거리는 심장의 고동을 느끼고 있었는데,
연결음이 끊기고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너무 긴장해서 어떻게 말을 하지? 라며 고민했었는데,
그녀에겐 난 그저 늘 통화하는 친구 중 하나. 로만 여기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러지 않고서야...



그렇게 한참을 애꿎은 소파에만 화풀이하던 나는 곧 요란한 벨소리가 울리는 폰을 조금 전의 기분은 잊은 채 받아든다. 급한건 아니었는데? 하며 빈정거리는 입과 반대로 기분좋게 웃고있는 눈을 주채하지 못한 채.

하지만 나의 이런 표정보다는 목소리만이 전달되고 있던 그녀여서일까, 주저하는 듯 목소리에 미안함이 가득하다.



[그, 아깐 미안.]
"뭐뭐."



알고 있다. 괜히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을 그녀라는 것은, 하지만 알고 있음에도 상대의 반응에 더 괴롭히고 싶은 마음 또한 공존하는 것이 사람이었고, 나역시 그저 즐거움을 좋아하는 인간이었다. 잠시 아무말이 없던 그녀가 매니저와 속닥이는 소리가 나고 곧, 어디야? 집? 하며 내게 묻는다. 그저 작게 응, 이라고 대답하긴 했는데 오프인날 왜 매니저? 라는 의문이 들었다.



"저...아츠코?"
[응?]
"혹시 오늘, 오프아니야?"
[급하게 일이 생겨서ㅡ, 근데 끝났으니까 집으로 갈께]



그 것도 모르고 난 그녀에게 심통을 부리고 있었다. 미안한 마음에 어떻게 해야할 지 몰라 어물쩡거리고 있으면 이번에는 저쪽에서 약속있어? 란다. 일이 있었던 것도 모른 채 심술이 났던 것이 마음에 걸려 위치를 알려주면 내가 가겠다는 의사를 표시했지만 본인이 가는게 빠르다며 그대로 집에 있으라고 당부하는 그녀였다.



통화를 마치고 소파에서 몸을 세워 멀뚱히 앉아있는다.
아마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을 것 같다.
늘어난 스케줄에 잠조차 제대로 자지 못하는 그녀를 위해 내가 뭘 해줄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 이대로는 멍하니 시간만 보낼 듯 하여 폰을 꺼내 이것저것 검색을 하다 어느 순간ㅡ





타카미나.



타카미나ㅡ



타카미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뜨면, 그 곳에는 내 앞에 쭈구리고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녀가 보인다.
뭐야, 잠이나 자고─. 눈을 뜬 나를 확인하자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곤 볼멘소리를 한다. 어쩐지 그런 그녀의 평소와 같은 모습에 얼굴근육이 풀어지며 얼빵한 표정을 짓고 있을 것이 뻔하지만, 그녀는 전혀 그런 기색없이 조금전의 샐죽한 표정을 풀며 희미하게 미소를 띄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아무말도 하지 않아도,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 정도로 함께한 시간이 기니까.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손닿는 거리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와 함께 걸어갈거라고, 내 주위에는 항상 그녀가 있을 거라고...
하지만 그건 나만의 자만이었다.
그녀는 그녀만의 날개를 펼친 채 그렇게 내게서 멀어지려 했다.

 

 

슬프지 않다면 그 것은 거짓말이다.

아무렇지 않다면 그 것 또한 거짓밀이다.

그런 나만의 감정과는 달리 그녀를 위해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주저하지 않도록 등을 힘껏 밀어주는 것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녀가 두려워하지 않도록 지금까지처럼 서로의 옆에서 디딤돌이 되어줬듯...

그렇기 때문에 난 이렇게 웃을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리 좋게 생각을 하려고 해도 지금까지처럼 손 닿을 거리에 그녀가 항상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생각 탓인지 조금 서늘한 기운이 항상 온기가 가득할 것 같던 가슴을 훑고 지나가는 듯 휭한 기분이 든다. 

 

 

 

알고 있다. 

굳이 이렇게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지금껏 그렇게 해왔기에 이런 불필요한 행동을 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어째서 난 이렇게 움직이고 있는 것일까. 비어버린, 차갑게 식어가는 공기를 데우고자 손을 뻗어 내 앞의 그녀를 끌어안는다. 갑작스런 내 동작에 깜짝 놀란 듯 뒤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뒤로 넘어가는 그녀였지만, 팔을 풀거나 그녀에게서 떨어지거나 하지 않는다. 그저 내 심장박동에 맞춰 박자를 맞추고 있는 그녀의 진동에 눈을 감을 뿐이다. 



"먹고싶은거라도 있어?"

"....타카미나"

"응?"

 

 

 

등을 토닥이며 나즈막히 읊조리는 그녀의 목소리에 울렁이던 마음이 가라앉는다.

음색이 나름 높은 편인 그녀이지만 가끔 내뱉는 저음은 내게 안정감을 줌과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긴장감 또한 가져다 준다. 지금 이 순간도 그녀의 손길을 따라 등의 신경이 유난히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을 보면 확실하다. 움찔거리는 어깨에 턱을 기댄 채 내가 지금 어떠한 상태인지 알면서도 여전히 손길을 멈추지 않는 그녀였고, 그런 그녀의 품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감싸고 있던 팔을 풀며 바닥에 손바닥으로 지탱한 채 몸을 세운다. 하지만 곧 내 몸은 중력을 거스르지 못한 채 다시 한 번 그녀의 품으로 떨어지고 만다.

 

 

 

"저, 앗짱?"

"응"

"일어나야지, 뭐라도 먹으럿..."

 

 

 

차마 공기중으로 뱉어내지 못한 문장은 길을 잃은 채 내 입속에서만 맴돈다.

몸을 떼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입을 막을 요량으로 키스를 해오는 그녀였다. 갑작스런 행동에 놀라서 이도저도 못한 채 경직된 상태로 있으면, 여전히 내 입술을 탐하고 있는 그녀가 등을 쓰다듬던 손이 유연하게 내 뒷목을 감싸 안으며 순식간에 자세를 뒤집는다.

 

 

 

"자, 잠─"

"왜?"

"그야!"

 

 

 

억지로 그녀의 얼굴을 떼어내면 의아하다는 시선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그녀였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 뭔가 잘못된 거야? 라는 듯 바라보고 있는 천진난만한 눈빛에 하마터면 넘어갈 뻔했다.

 

 

 

"밥, 먹어야지! 그러니까─"

"그러니까, 아까 말했잖아?"

"응?"

"내가 먹고 싶은 거. 일부러 그런거 아니었어?"

 

 

 

여전히 움직일 줄 모른 채 가만히 내리 깔 듯 바라보는 나만을 주시하고 있는 눈동자에 조금 전의 상황이 떠올라 그만 고개를 왼쪽으로 돌린다. 어쩐지 스스로 밥그릇을 그녀의 얼굴앞에 갖다 받친 꼴이 된 주제에 이제와서 도로 뺏는 꼴이 된 것이다. 그다지 그럴 생각은 아니었지만, 게다가 아직 밝기도 하고...

그런 저런 생각을 하며 바라본 창에는 푸른 하늘 위에 누워있는 우리 두 사람의 모습이 비춰진다. 

 

 

 

"──맘대로, 해..."